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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Jun 08. 2018

미니멀 라이프야? 돈이 없는 거야?

메를린(Merlin)을 팔았다.

흑왕 메를린(Merlin).
메를린은 말의 이름이며, 프랑스어로 소를 때리는 둔기나 도끼를 뜻하는데 투우마다. 투우마로써 최고 정점의 말이었고, 몸값은 350억, 유전자는 4억, 새끼는 12억이라고 한다. 350억이라는 가격도 너무 허무하게 만드는, 말이 불가능한 스텝과 소를 무서워하지 않는 용기, 투우사와의 조화, 소를 농락하고자 하는 태도. 메를린은 몇천 년에 한 번 나올까 하는 투우마이며, 지구 상을 통틀어 메를린보다 뛰어난 말은 없었다.
 - 나무 위키 발췌-


메를린(Merlin)은 흑왕의 이름에서 따온 우리 차의 이름이다. '인생은 차(Car)!'였던 전주인과 '성격 깔끔하기로 유명하신' 남편님의 애마였고 신혼초부터 우리와 함께 해온 정든 친구다. 그런 메를린(Merlin)을 앞으로는 못 보게 됐다. 차를 탈 때마다 "메를린(Merlin) 안전운전!"하던 남편의 인사도 듣지 못하겠지.


메를린(Merlin)을 떠나보내지 못해 애지중지하던 남편은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팔겠다 말하더니 일사천리로 일을 끝냈다. 늘 가던 카센터 사장님은 메를린(Merlin)의 상태를 잘 알고 팔 거면 언제든 자기한테 오라 욕심을 냈었다. 협상의 달인 남편은 여러 곳의 견적을 받아 들고 카센터 사장님과 최고의 딜(Deal)을 해왔다. "메를린(Merlin) 판 돈은 당신이 가져요!"하며 쿨(Cool)하게 말했더니 더 적극적인 딜(Deal)을 해온 것이 아닌가 싶은데, 능력껏 쟁취한 큰돈(?)을 마음껏 즐기길 바랄 뿐이다.


어쨌든, 우리의 메를린(Merlin)을 떠나보냈다. 차를 없앴다고 말하니 주변에서는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를 냈다. 시골 갈 때는 어떻게 갈 거냐를 시작으로 다 늙어서 걸어 다닐 거냐, 차 없이 어찌 사냐, 택시비가 더 나간다, 다시 무슨 차를 살 거냐 등등... 간섭쟁이들이 나섰다.


시골 갈 때 필요하면 렌트하고, 아직은 건강하니 걸어 다닐 거고, 차 없어도 사는 데 전혀 지장 없고, 택시 정도는 탈 수 있을 만큼 벌고 있고, 다시 차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이 우리 삶에 가치 있다 판단되면 살 예정이다. 


나는 몇 년 전부터 많이 가진 것이 부담스럽다. 물론 '많다'는 것은 나의 기준이다. 넓은 집(뭐, 이것도 내 기준)에도 살아봤고, 화분도 50개씩 키워봤고, 책도 몇 천권 가져 봤고, 의자도 양껏 사봤다. 심지어 양말도 수십 개 가지고 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이 모였는지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양말을 보고 '물욕도 물욕도 이렇게 많을 수가 없다'는 자아비판을 하며 재활용함에 넣었다.


우리는 소파가 없다. 식탁도 없다. 이사할 때마다 집이 절반에 가깝게 작아져 지금은 싱글 때만큼 작다. 서랍장을, 책장을, 의자를 또 없앴다. '가진 것 하나를 버리지 않고 구매하지 않기!' 남편에게 규칙을 제안했다. 물론 대부분의 소비는 내 손을 통해 이뤄지니 실은 나를 위한 다짐이었다.


버리다~버리다~, 없애다~없애다~, 차마저도 버렸느냐며 지인이 물었다.

미니멀 라이프야? 돈이 없는 거야?

거창한 미니멀 라이프는 아니다. 돈은 우리가 쓸 만큼은 있다. 그저 가치 있다 판단되는 곳에 돈을 쓰고 싶을 뿐이다. 많이 가졌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많이 가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물론, 좋아하는 것과 가치 있다 판단하는(ㅋㅋ) 최신 노트북, 키감 좋은 키보드, 조금 사치 부린 마우스, 애플 워치 등 가진 것이 전혀 없지는 않다. (뭐, 일은 해야 하니까. 자기 암시... 자기 암시...) 그러니 미니멀 라이프라고 표현하기는 멋쩍다.


남편이 모르는 나의 계획은 그릇과 이불, 모으던 컵을 없애는 것이다. 가족이 사용하는 그릇은 정해져 있고, 하루가 멀다 하고 손님을 초대하던 예전과 달리 조용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그것들이 필요 없다. '우리 잘 살고 있어요.'하며 보여주기 식 치장에 불과했던 컵은 유효성을 잃었다.


한참 더운 여름. 우리 집을 방문했던 엄마는 "그렇게 더운 집에, 에어컨도 없으면서 여름 이불 없다고 겨울 이불을 주드라 왜~"하고 언니들에게 투정 부리듯 말씀하셨다. 그 일이 민망해서 사기 시작했던 이불.


집들이며 가족행사며 친구들, 직장동료들과 ‘집’에서 모임을 하느라 사들인 그릇과 ‘그냥’ 이뻐서 모으기 시작했던 컵들, 이 모두를 내려놓기로 맘먹었다.


그리고, 나에게 바란다.

한 두 번의 행사를 위해, 모셔놓고 사용하지 않을 이쁜 것들에 현혹되어 그것들에게 삶의 중요한 가치를 '또다시' 부여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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