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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Jul 12. 2018

좋아한다는 것은 그것을 잃기 싫은 마음도 포함되어 있다

시장 구석에 세 평 남짓하는 떡집이 있다. 붉은팥, 흰 팥이 떡 꼬물로 든 찰떡을 파는 곳이다. 너무 맛있어서 이 동네 떡집은 다 맛있나 했는데 다른 집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쫀득함과 두툼함이 있다. 이른 아침 할머니 손으로 직접 만드는 모습을 보고 역시 할머니 손맛을 따라 갈자가 없구나 하며 단골이 됐다. 큰 사이즈 대비 2천 원에 7개는 엄청 저렴한 가격이다.  


요즘 오며 가며 보니 할머니 대신 어떤 아주머니가 앉아 떡을 파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아르바이트생인가 했는데, 함께 앉아 있는 모습에서  따님이라는 사실을 묻지 않아도 알아볼 수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먹으려고 평소와 달리 떡을 많이 사러갔다.

"35개인가? 만 원어치 주세요."

"만원에 30개요."

"어? 네?"

이상하다. 2천 원에 7개, 만 원이면 계산상 35개인데 30개란다. 뒤에서 할머니가 소리친다.

"더 줘, 더 줘, 먹어보라고 더 줘."

따님은 대답도 하지 않고 숫자를 세며 딱 30개 담는다.  

"2천 원에 6개니까 만원이면 30개예요."

"단... 고오... 올"이라고 말하려는 나를 두고 휑하니 돌아선다. 2천 원을 내밀면 "원래 6개인데 7개를 주는 거야" 하던 할머니의 말이 장사꾼의 입버릇이 아니었음을 그날 처음 알았다.


한국사회의 정으로 치사하게 구는 것은 싫지만 떡집에 대한 실망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게 휑한 표정으로 돌아선 것도 서비스 정신으로 보면 부족한 마인드였지만 가장 마음이 상했던 것은 할머니의 말을 무시한 태도였다. 그곳에서 오랜 시간 장사를 해왔을 할머니의 노하우를 전수받으러 온 것이라면 그런 태도는 인기 떡집의 예비 사장으로서 보여줄 행동은 아니었다. 할머니가 왜 매번 '원래 6개인데 7개를 주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7개를 주며 장사를 해 왔는지, 손님이 오면 아픈 다리로 벌떡 일어나 늦지 않게 떡을 싸주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는지 따님이 좀 더 면밀하게 인수인계를 받았으면 하는 단골의 바람이다.


그 후로도 자주 보이는 따님의 표정에는 뭔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 뚱한 표정이 역력하다. 서비스 정신이란 베푸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장사의 승패가 서비스 정신으로 좌우되는 시대다. 오후 3시면 모두 팔리고 마는 떡집 예비 사장님이 서비스 정신을 좀 더 장착하기를 바라는 것은 단골이 가질 수 있는 기대감 아닌가.


나는 무엇이든 좋아하는 마음이 들면 그것을 싫어하기가 쉽지 않다. 결정적인 이유가 생겨 싫어지더라도 한동안 후유증을 앓게 된다. 사람도, 물건도, 심지어 쓰던 걸레도 내 마음에 쏙 들면 주던 마음을 챙겨 오지 못한다. 할머니네 떡은 최근 먹어 본 떡 중 가장 맛있다. 시각, 미각, 촉각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따님의 뚱한 표정이 계속되어 떡집에 대한 내 마음이 어느 날 갑자기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거창하게 '서비스 정신'까지 내어 놓았다.


좋아한다는 것은 그것을 잃기 싫은 마음도 포함되어 있다. 동네 식당 플랭카드에 이렇게 적혀있다.

단골손님 보호를 위해 TV 출연을 거절했습니다.

맛집의 사장님 마인드가 더 맛나다. 

곧 다시 찾을 떡집의 새로운 예비 사장님도 떡 맛 보호를 위해, 단골손님 보호를 위해 미소를 구해오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대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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