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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Jul 11. 2018

등 뒤를 받쳐주는 쿠션 같은 존재, 가족

주말, 엄마 생신 모임이 있었다. 막내 언니 집들이를 겸한 모임이라 저녁은 언니 집 근처 한정식 집이 예약되어 있었다. 룸으로 들어서는데 테이블에 화사한 돈&꽃 바구니가 나오지 않은 음식을 대신해 자리 잡고 있었다.

- 돈&꽃 바구니 -

처음에는 식당에서 준비한 모조품인가 했다. 가까이서 보니 꽃이 모조였고, 돈이 진짜였다. 큰 형부의 이벤트였다.

이벤트를 준비한 자의 여유. 큰 형부 얼굴에는 화사한 웃음과 자신감이 넘쳤다. 쌍엄지 척! 역시 30년 넘는 큰 사위의 내공이 느껴지는 이벤트였다.

잠시 후 작은 언니네가 도착했다. 꽃 바구니를 보며 작은 형부의 첫마디는 누가 준비했느냐를 시작으로 "형님 이러기예요?"였다. 혼자 이벤트를 준비한 자에 대한 질투의 표정과 아쉬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맏사위의 포스를 익히 알고 있던 작은 형부는 그저 한숨을 내쉰다. 헤어지기 전까지 그의 반복된 멘트는 '형님 이러기예요'였다.  


주체자였던 막내 언니네는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모습으로 꽃바구니에 신경 쓸 겨를 없이 바쁜 막내 형부. 하지만 마지막으로 꽃을 독차지한 것은 막내 언니네였고 이렇게 화사한 모습으로 거실을 장식하고 있다.

- 꽃 바구니 -

전날 밤 엄마의 지령으로 돈을 뺀 사람은 나와 남편. 언제나 궂은일은 막내가 하는 법이니까요. 어차피 언니들을 흉내 낸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니 앉아서 돈이라도 빼야 사랑을 받을 수 있다.


매년 하는 생신 모임에 언제나 이벤트가 하나씩 있다. 작년, 제주도 여행을 떠나는 외갓집 식구들을 걱정하던 큰언니 큰딸이 함께 하지 못하며 당부의 당부를 했단다. "엄마 제발 싸우지만 말고 놀다 오세요." 조카의 촉이 백 프로 적중해서 이벤트가 발생했고 언제나 그렇듯 다음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수습됐다. 올해 이벤트는 큰 형부의 센스, 돈&꽃 바구니로 화려하게 시작되어 별다른 추가 이벤트 없이 잘 마무리됐다.


가족 모임을 하고 돌아오면 한동안 마음이 꽉 찬 기분이 든다.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아도 등 뒤를 받쳐주는 쿠션 같은 느낌이랄까. 키울 때 엄마는 힘겨웠겠지만 형제애를 만들어준 엄마가 가장 위대한 분이고, 네 명이나 되는 여동생들을 아빠 대신 잘 보듬어 준 오빠의 공이 컸고, 금전적으로 여유를 가진 큰 언니 덕분에 다들 도움받고 여기까지 살아왔다 생각한다.


새삼, 이런 가족이 있다는 것이 가슴 벅차도록 감사했다. 파고들면 문제없는 가정 없듯 따지고 들자면 힘겨운 일도 많았다. 그럼에도 엄마 인생 막바지에 별 탈 없이 모여 웃고 떠들 수 있는 이 시간에 너무 감사하다.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또 그 후로도 계속 이렇게 모여 엄마 생신 모임을 하고, 이벤트를 만들고, 귀여운 질투를 하고, 모임을 주최하고, 궂은일을 하며 그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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