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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Jul 10. 2018

'갖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갖지 않는 것'이라는 정의

차를 없애고 처음으로 긴 이동을 했다. 엄마 생신 모임 겸 막내 언니 집들이가 있었다. 지하철, 택시를 타고 두 시간 반의 긴 여정 끝에 저녁 식사 장소에 도착했다. 돌아오는 길은 작은 언니 차를 얻어 타고 버스 정류장으로 20분, 광역 버스로 50분, 지하철로 30분의 시간을 들이고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가는 길, 두 시간의 지하철 이동 중 사람이 많아 한 번도 앉지 못했지만 다행히 다리가 아프지 않았고, 오는 날 언니 차와 광역버스의 시원한 에어컨 덕분에 편히 잠을 자며 돌아올 수 있었다. 대중교통으로의 이동이 조금 불편했지만 나름 효율적인 시간이었다. 단, 언니에게 주고 싶었던 책을 가져다주지 못했던 것과 나눠 준 음식을 가져오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갖지 못했다'와 '갖지 않는다'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결혼 후 2년간 차가 없었다. 태어나 대출이라는 것을 처음 받아 본 우리는 빚쟁이가 된 기분이었다. 매달 대출을 갚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 '차'는 사치품처럼 느껴졌다. 아직 젊고 튼튼한 다리가 있는데 뭣하러 차를 사느냐 차를 사지 못하는 상황을 합리화시켰다.


결혼 후 첫 명절이 되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하기로 했다. 친정, 시댁 모두 시골인 우리 부부는 늘 시외버스, 택시를 타고 다녔기에 크게 힘들지 않다 생각했다. 짐을 들고 두 사람이 두 집을 가본 경험이 없었기에 꽤나 용감한 선택을 한 셈이다.  


큰 캐리어를 끌고 광역버스로 2호선 건대입구역으로 이동, 지하철을 타고 강변역 버스터미널로 이동, 시외버스 탑승. 막힌 도로 덕분에 7시간 반 만에 낯선 소도시에 내려 택시를 타고 시댁 도착.


명절 당일 친정 가는 길, 시동생 차를 타고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 다른 도시로 3시간 이동 후 버스를 갈아타고 2시간 이동. 택시를 타고 친정 도착.


돌아오는 길은 오빠 찬스로 버스정류장 이동, 강변역 도착해 집을 나설 때와 같은 방법으로 귀가.


명절이 끝나고 우리는 녹초가 되었다. 결혼 후 세 달 만에 가는 친정과 시댁이라 선택한 원피스는 왜 이렇게 거추장스러운지. '명절'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기고 '결혼의 늪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곳에서 절실히 느꼈다.


그 후 차를 사야 한다는 필수 불가한 이유들을 만들어내는데 혈안이 되었다. 하지만 이유들을 들고 나설 때마다 '대출'이라는 높은 문이 가로막아 돌아서게 했다. '우리보다 대출 많은 사람도 좋은 차 사더라'는 이유를 만들어도 보았다. 대출이라는 높은 문은 '젊고 튼튼한 다리'를 내 보였다. 또다시 돌아섰다.


이런저런 이유들을 들고 시도하다 결국, 차를 사지 않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차는 '갖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갖지 않는 것'이라는 정의였다. 자신의 마음이 가장 편한 선택을 하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살 수 있지만 사지 않는 선택을 하고 나니 필수 불가한 이유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그 후 명절의 트라우마는 '이보다 더 힘들 순 없다'는 에피소드가 되어 우리 부부의 추억거리가 되었다. 대출에 익숙해지는 2년을 보내고서야 차를 샀고 이제 다시 차를 '갖지 않는' 선택을 했다.


이번 모임은 경기도권이었으니 지난 명절과 달리 엄청한 이동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늘 타던 자동차가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니 불편함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익숙하지 않은 활동일 뿐 마음은 차를 사야 하는 이유들을 생산해 내지 않았다. 그 불편함이 마음을 녹초로 만들지도 않았다.  


요즘 '갖지 않는' 것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한다.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며 더는 갖지 않아도 될 많은 것들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무엇을 갖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면 요즘은 갖지 않기 위해 주변을 둘러본다. 인간관계도, 물건도, 돈도 가지려고 하면 더 멀어지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갖지 않는 것'이라는 정의를 두고,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애써 그것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이번 모임도 불편했지만 '갖지 않는 것'이 주는 여유를 알게 해 준 7년 만의 경험이었다.

돌아오는 길, 남편과 다짐했다. 앞으로도 이런 불편함으로 무언가를 갖기 위해 애달파하지 않는 마음을 유지하고 갖지 않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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