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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Jul 13. 2018

내 가방의 무게는 언제나 할머니보다 가벼울테니까

이른 아침 집을 나서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약속 장소로 향한다. 인터넷의 멋진 사진들에 비해 작아 보였던 서점. 그래도 멋스럽게 분위기를 내어 놓았다. 약속시간은 한참 멀었지만 책을 보기 위해 일찍 도착한다. 이제 막 오픈한 서점에는 손에 꼽을 만큼의 사람만 보인다. 사람이 없어서인지, 서점 안이 유독 차갑게 느껴진다. 이곳저곳 책을 찾아다니다 자리를 잡고 앉는다.


어깨가 짓눌려 온다. 책 읽는 내내 가방 내려놓는 것을 잊었다. 서점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나선다. 유독 무겁게 느껴지는 가방에, 넣고 다닐 자신이 없어 책 한 권을 사지 못하고 일어선다. 인터넷 주문을 기약하며 메모를 한다.


추천한 식당이 생각보다 멀다. 덥고, 어깨는 아프고, 신발도 불편하다.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으니 열심히 걸어간다. 평소 좋아하지 않는 식당이었지만 오늘따라 맛있다. 역시 배고픔을 따라올 음식 맛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유명하다는 카페로 옮겨 고급진 커피를 주문한다. 고급진 커피를 고급스럽게 즐길 여유 없이 바닥을 보겠다는 의지로 마셨다. 그리고 빠르게 미팅을 진행한다. 시간이 모자란 듯했지만 다음 약속을 위해 일어나야 한다. 함께 지하철로 가기로 한다.


지하철이 꽤 멀어졌다. 버스 서너 정거장을 걸어야 한다. 다시 어깨와 발이 아파온다. 택시의 유혹을 뿌리치며 조금만 더 걷자. 조금만 더 걷자. 드디어 지하철을 만났다. 꽤나 깊다. 결국 어깨에 맨 가방을 내려 손에 든다. 가방이 유독 무겁다.


다음 약속 장소로 향한다. 다시 두 번의 환승을 거쳐야 한다. 자주 타보지 않던 6호선, 9호선의 배차 간격이 이렇게 긴 줄 몰랐다. 약속 시간에 맞춰 이동하다 보니 촉박하게 느껴진 것이겠지. 7분 후 도착. 9분 후 도착. 약속 시간에 늦겠다. 왠지 마늘향이 입속에 퍼져있는 기분이다. 양치를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 결국 양해를 구하고 10분의 시간을 벌었다. 지하철 개찰구를 나서며 칫솔을 꺼내 든다. 다행히 화장실이 가깝다. 부랴부랴 양치를 하고 얼굴을 가다듬고 지하철역을 나선다. 3분 전 도착.


시원한 물 한잔을 부탁하고 미팅을 시작한다. 열정적인 설명과 설득. 나 일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싶다. 설명하는 나를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든다. 시원한 회의실, 시원한 물. 여기서 공간이동으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두 시간의 미팅으로 탈진 상태가 된다. 다음 만남을 약속하며 건물을 빠져나온다. 소개해준 지인에게 전화해 미팅 내용을 전하고서야 오늘의 미션 클리어.


다시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왜 이렇게 길고 멀게만 느껴지는지.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온다. 자리가 없다. 다시 가방을 내려 손에 든다. 맨발로 선 듯 발바닥 감각이 무뎌진다. 어디 자리 없나?  


자리를 찾아 걷다 커다란 배낭 가방을 메고 앉아 있는 할머니를 발견한다. 걸음을 멈춘다. 에베레스트라도 가야 할 만큼 두툼해 보이는 배낭 가방은 대략 5~7킬로그램은 돼 보였다. 가방을 둘러맨 할머니의 몸이 뒤로 끌어당겨진 모습이다.


손에 든 가방이 민망해진다.

가만히 할머니를 살핀다. 얼굴의 주름은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가방에 당겨진 몸을 부여잡고 있는 두 손은 할머니의 거친 인생을, 지금도 살고 있는 거친 삶을 말해준다. 저 무거운 가방을 메고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저 가방을 메고 걸을 수는 있는 것인가.


손에 든 가방을 둘러멘다.

종일 무거운 가방을 든 나를 측은하게 생각했다. 그것을 들고 바쁘게 움직이는 나를 안쓰럽게 생각했다. 그 마음이 할머니의 배낭 가방에, 할머니 손에 부끄러움을 타고 발밑으로 내려앉는다.


하루 메고 다닌 가방이,

내 삶을 말해 줄만큼의 무게였던가.

내 삶을 힘들게 할 만큼의 무게였던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버린 무게였던가.


다시 한번 가방의 무게를 느껴본다. 평소와 같은 걸음으로 조용히, 천천히 집으로 돌아온다.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다. 가방이 인생의 무게처럼 느껴지는 날에는 할머니의 배낭 가방을 잊지 않기로 한다. 할머니의 손을 잊지 않기로 한다. 젊은 내가 둘러 멜 가방의 무게는 언제나 할머니의 배낭 가방보다는 가벼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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