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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Jul 18. 2018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외면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나는 유독 밥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어릴 때부터 매 끼니마다 따뜻한 밥을 해 준 엄마 덕분에 지금도 식은 밥을 좋아하지 않는다. ‘식은 밥’에는 실제로 차가워진 밥과 밥솥에 든 지난 식사 때 해둔 밥도 포함이다. 그래서 나는 보온 밥솥이 없다. 매 식사마다 따뜻한 밥을 해 먹는 습관을 가진 나는 밥을 넣어 두고 먹을 보온 밥솥이 필요 없는 것이다.


맛있는 식당이라는 정의를 내리는 기준 또한 밥의 맛, 쌀의 퀄리티를 기준으로 한다. 그런 기준에서 갓 지은 솥밥을 내주는 을지로의 김치찌개 집을 아주 좋아한다. 좋은 쌀로 지은 이천 쌀밥 집은 내게 더할 나위 없는 맛집이다. 그리고 보통 밥맛이 좋은 집은 맛집일 확률이 높다. 반찬도 정갈해 밥과 반찬만 먹어도 맛있다.


날씨가 더워지고 나니 집에서 밥 해 먹기가 힘들어졌다. 전기밥솥에 하는 밥은 열기가 덜하고 손이 덜 가는 일이라 쉽다. 나는 주물 압력 밥솥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스레인지에 올려야 하고, 때에 맞춰 불 조절을 해줘야 한다. 집안이 열기로 차고 더운 가스레인지 앞으로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더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요즘 외식이 잦았다. 가뜩이나 집밥을 좋아하고, 밥에 대한 기준이 명확한 나는 긴 외식을 하는 일이 꽤나 드문 일이다. 주물 압력 밥솥에 하는 밥과 식당의 찐밥, 전기밥솥 밥은 차원이 다르다. 심지어 밥그릇에 담아 보온 통에 넣어뒀다 내어주는 밥은 아침에 해서 저녁까지 뒀을 가능성이 높다. 쌀의 퀄리티 또한 좋다고 할 수 없다.


동네에서 꽤 오래되었다는 기사 식당 김치찌개 집을 가서 실패하고(정말 밥은 최악이었다.), 맛집이긴 하지만 밥을 안주는 만둣국 집을 다녀와 허전하고, 평소 사람이 많아 맛있는 집인가 보다 하고 찾아간 칼국수집에서 국수로 실패하고 밥을 시켰지만, 이는 더 큰 낭패.  


계속되는 밥과의 전쟁에서 실패하고 나니 주물 압력밥솥이 해주는 밥이 너무 먹고 싶어 졌다. 고슬고슬하게 지어 찰지고, 원한다면 누룽지 맛을 살짝 낼 수 있는 따끈따끈한 우리 집 밥.


결국, 내 입으로 말하고 말았다.

“내일부터는 집밥 먹어요. 정말 못 먹겠다.”


버티다 버티다 어쩔 수 없어서 툭 하고 내뱉어진 말이다. 애써 외면했던 머리가 기억하는 밥, 혀가 기억하는 밥의 위협적인 유혹에 그만 넘어가고 말았다.  


퇴근이 빠른 내가 저녁을 해야 하고, 한번 시작될 집밥은 한동안 계속될 것을 안 봐도 너무 잘 안다. 더운 여름 땀을 흘리며 주물 압력밥솥으로 밥을 하고, 맛있는 밥에 걸맞는 반찬을 하고 있을 나. 그 시간이 꽤 더울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제 더 이상 ‘맛없는 밥은 싫다.


이 새벽. 저녁에 할 밥을 생각하니 벌써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밥 하나만으로도 행복해질 내 배. 그리고 우리 가족. 아무리 모르쇠로 일관하려 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외면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 더운 여름, 따뜻한 솥밥을 찾아 헤매는 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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