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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Jul 21. 2018

어떤 삶을 살아보고 싶은가요?

월요일.

글 속에 ‘을지로 솥밥’을 쓰고 나니 격렬하게 먹고 싶어 졌다. 솥밥을 위해 을지로 약속을 잡는다. 일을 겸한 이동이긴 했지만 꼭 가야 하는 곳은 아니었다. 업무보다는 솥밥이 그리워, 마음은 콩밭이다. ‘배고프니까 밥부터 먹어요.’ 문자를 보낸다. 사무실이 아닌 식당에서 만나자는 소리다.


역시 솥밥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따뜻하고 고소한 향을 풍기며 바닥에 연갈색 누룽지를 내 보였다. 고슬고슬하게 지어진 쌀밥 위에 얹힌 네다섯 개의 콩. 김치찌개는 바닥을 드러냈고 반찬도 없다. 하지만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는다. 반찬이 필요 없는 맛있는 밥.


요일.

평소와 같이 이른 새벽 일어나 책을 보고, 글을 쓰고 아침을 간단히 먹는다. 전날 먹은 쌀밥을 생각하며 운동을 두 시간으로 늘려 땀을 흠뻑 흘린다. 오늘은 책 읽는 날로 정했다. 적게 먹고 적게 움직이며 조용히 앉아 책을 읽는 날.


느지막한 저녁, 다음 달 있을 봉사 모임을 위해 기획하고 있는 아이디어를 정리한다. 매년 주최하고 있는 모임은 해가 지나면서 더욱더 활기를 띠고 모이는 사람들이 많아져 꽤 커지고 있다. 초기 컨셉에 맞지 않아 축소해서 진행하려고 한다. 좋은 취지의 모임을 하자는 것이지 비즈니스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적당한 수준의 모임을 만들어 꾸준히 하는 것이 목적이다. 다음 달부터는 컨셉을 변경해서 소수 정예로, 꾸준히 할 수 있는 모임으로 운영해 나갈 생각이다. 어느 정도 기획이 정리되었다.


수요일.

1:1 PT가 있는 날이다. 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강사님과의 만남은 늘 기대된다. 강사님을 만나 육체적으로 건강해졌고, 그로 인해 정신도 맑아졌다. 아주 좋은 강사님이자 나의 오랜 친구다.


평소와 달리 강도 높은 운동을 하며 역시 나이가 들 수록 더 열심히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꾸준히 운동을 해 왔음에도 강사님을 만나면 늘 부족함을 느낀다. 최선을 다해 운동을 한다. 세 달 후 있을 산티아고 순례길 모임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힘을 길러야 한다. 평생 한번즘 가보고 싶었던 산티아고 순례길. 드디어 세 달 후 가게 되었다. 체력적으로 꽤 힘들 시간을 위해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오후에는 달과님 카페에서 글쓰기 모임이 있는 날이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움직여 달과 님이 내려준 예멘 모카 마리티를 마신다. 은은하게 풍기는 향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목요일.

장대비가 내리는 날이다. 새벽의 공기는 더욱 가라앉는다. 습하다. 하지만 떨어지는 빗소리가 좋아서 눈을 감고 들어본다. 오늘은 글이 더 잘 써지려나보다. 빗소리에 취해 한참 듣고 앉아 있자니 아름다운 글귀들이 떠오른다. 아! 역시 자연의 소리는 그 무엇보다 감동이다. 빗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고 빗소리를 들으며 운동을 하고 빗소리를 들으며 영어학원을 간다.


영어학원을 다닌 지 벌써 1년인데 여전히 영어는 어렵다. 해외여행에서 불편함은 없지만 자만하지 않고 꾸준함을 유지하기로 다시 한번 다짐한다. 영어 학원을 다녀오면 왠지 하루가 풍족해지는 기분이 든다. 역시 배움은 끝이 없다.


금요일.

다행히 하늘이 맑다. 중고 장터에 읽던 책을 팔러 나가는 날이다. 구매하는 책의 양이 점점 늘어나 집을 점령하면서 규칙을 가지기로 했다. 산만큼의 양을 내다 판다. 매주 금요일 중고 장터는 한 주동안 구매해서 읽은 책을 내다 파는 날이다. 책들이 저렴한 가격에 팔려 나간다. 좋아하는 유시민 작가의 책은 팔고 싶지 않아 옆자리에 뒀다 내놨다, 뒀다 내놨다를 반복하다 분홍 머리칼을 휘날리는 대학생에게 뺏기듯 떠나보냈다.


오후, 사무실에 나가봐야 한다. 일주일 동안 유유자적 내 시간을 가졌으니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 두 번쯤은 얼굴을 내비쳐야 한다. 다들 즐거운 주말을 위해 4시 퇴근 규칙을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금요일 오후 4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사무실 불을 끄고 문을 닫는 일을 한다. 단 한 명도 사무실에 남기지 않는 주말의 시작이다.


드디어 주말.

매일이 주말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그래도 주말은 왠지 기다려진다. 밀린 빨래도 하고, 영화도 보고, 마당에서 동네 친구들과 바베큐 파티도 하는 날.


한주를 되돌아본다. 이번 주도 열심히 나를 위해 살아냈구나 칭찬한다. 별일 없었던 일주일, 큰일 없었던 일주일, 유유자적 맛있는 밥을 먹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즐거운 운동과 영어를 배우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보낸 알찬 한주. 또다시 다가올 다음 주를 기대하며 주말을 마무리한다.  




어젯밤, 롯데 2 월드 123층 스카이라운지를 가 보았다. 꽤 높은 곳에서 내다본 세상은 작디작아 무력해 보였다. 나이스 타이밍. 남편을 설득한다. 내가 꿈꾸는 삶, 모든 것을 접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유유자적한 생활을 딱 1년만 해보자 말한다. 넘어온 듯하다가도 다시 현실로, 넘어온 듯하다가도 다시 정신을 가다듬는 남편을 보면 내가 너무 이상적인 삶을 꿈꾸나 하는 생각을 하지만 정말 살아보고 싶은 삶이다.


돈은 돌고 도는 것, 벌면 써야 하고 쓰면 또 벌어지는 것. 아등바등 살아가는 삶을 사는 우리가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면 어떻게 살고 싶은가 하는 상상으로 그려본 나의 일주일이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다. 딱 1년만 이렇게 살아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하루,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는 하루, 꿈을 꾸는 하루. 이렇게 살다 보면 남은 인생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한 달만에 다시 지금의 삶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일.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삶이다.


이런 삶이 상상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이 되는 그날까지 나는 남편 설득하는 일을 절대 게을리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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