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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Jun 24. 2018

명품으로 휘감은 외모의 짝퉁 마음을 가진 그녀가,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잘 그려볼 수 있길 바란다면 욕심일까?

요즘 나의 주말 업무 중 0순위는 물건을 파는 일이다. 이번 주말도 여러 가지 물건을 정리해서 중고샵에 올렸더니 한 사람이 물었다. '브랜드가 뭐예요?', '브랜드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깨끗하게 사용했고 저에게는 의미 있는 물건이니 기운이 좋습니다.'라 답했다. 이미 중고를 구매하겠다고 나섰다면 제품의 상태를 물어보는 게 먼저가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에 브랜드를 알고 있음에도 그렇게 답했다.


이런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유럽여행에서 만난 그녀가 떠올랐다. 


모처럼 남편이 휴가를 낼 수 있어서 짧은 기간에 여러 곳을 갈 수 있는 패키지여행을 선택했다. 패키지에는 함께 동행하는 가이드가 있다. 출발해서 돌아올 때까지 늘 함께 하는 사람.


체코의 어느 마을을 여행하는 일정이었다. 관광버스를 세워두고 마을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다. 구불구불한 동네 길을 감상하며 올라가는데 뭔가 허전했다. 가방이 없다. 여권도, 돈도 모두 든 가방을 두고 온 것이다.


가이드가 정색을 했다. 셔틀버스가 공짜 같지만 본인이 돈을 주고 탔는데 또 내야 하느냐, 다른 사람들 다 기다리게 해야 하는데 어쩔 거냐며 휴우~ 하고 한숨을 쉰다. 마을 관광 일정이면 다들 보고 있어도 되지 않느냐는 내 말에 안된단다. 의아했지만 가이드가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이해했다. 어쨌든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안했지만 가방을 가지러 가야 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셔틀버스 기사는 우리(남편과 나)에게  걱정 말라며 관광버스가 있는 앞까지 데려다줬다. 친절한 셔틀버스 기사님.


부랴부랴 뛰어가 가방을 챙겨 왔다. 다시 셔틀버스를 탔다. 가이드가 돈을 내야 한다 했으니 버스비가 얼마냐 물었다. 기사는 웃으며 말한다. "No! No! It's free~!" 헐.(ㅜ.ㅜ)  그리 먼 곳도 아니었고 셔틀버스가 우리를 기다려 준 덕분에 정확히 6분 만에 다시 관광객이 모인 곳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도착하자 마을 자유 관광이란다. 1시간 30분 후 모이면 된다는 가이드의 말에 더 당황했다. 가이드의 얼굴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도 그랬을까?


그 후, 가이드는 조용히 설명에 묻어가며 내 가방을 디스 하기 시작했다.

"왜 우리가 명품 살 때 샤넬이나 구찌를 사지 00은 안 사잖아요."

내 가방은 00였다. (나도 함께 디스 하기 싫어 00이라고 표현한다.)


순간, 남편과 나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얼음이 됐다.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감고 있었다. 가방, 옷, 신발, 팔찌, 시계(시계는 무려 700만 원짜리라고 자랑했다. 면세점에서 다시 몇백만 원짜리 시계를 구매하며 재테크라고 말했다.)까지, 보이는 것만 해도 천만 원은 훌쩍 넘고도 남았다.


일차적으로 가방을 두고 온 나의 잘못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녀의 첫마디가 셔틀버스비였던 것이 너무 아쉬웠다. 직업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고객의 마음을 먼저 챙겨줬어야하지 않았을까. 아니 최소한 먼 타국에서 우리를 일차적으로 보호해야 할 위치에 있는 가이드로써 안도의 말 정도는 해줬더라면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한국으로 돌아오며 그녀는 말했다. 기억력이 좋으니 유럽여행을 갈 때 궁금한 점이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줘도 좋다고, 그림과 함께 고객들을 다 메모하고 기억한다 말했다. 그림과 함께 메모하는 습관을 가진 가이드가 자신의 모습도 그림으로 잘 그려볼 수 있길 바란다면 욕심일까?


나는 그녀를 이렇게 메모하며 똑똑히 기억한다.

'명품으로 휘감은 외모의 짝퉁 마음을 가진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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