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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Jun 25. 2018

내 주변에 그녀가 있다. 그래서 나는 당당하다.

혼자 집에 있게 되어 친한 친구가 놀러와 하룻밤을 자고 갔다. 같이 보내는 밤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오래도록 가깝게 사귀어 온 막역한 친구'인 그녀는 싱글 시절부터 워낙 우리 집에 자주 오갔고, 서로의 속내를 다 알고 지내는 터라 가족 같은 친구다. 실제 두 살 많은 언니다.


오랜 미국 생활 중 잠시 돌아온 친구가 한국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든든한 보석을 우리 집은 아니지만 친구 부모님 집에 맡겨 둔 기분이랄까?  꽤 오래전에도 1년 만에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친구가 그리웠던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맞이했던 기억이 난다. 오랜만의 만남에 밤을 새우며 이야기하다 하룻밤이 모자라 이틀을, 이틀 밤이 모자라 사흘을 쉴틈 없이 이야기 나누던 추억이 있다. 그렇게 마음으로 의지하며 서로의 삶을 공유하던 우리는 나의 결혼으로 그녀가, 그녀의 미국 생활로 내가, 헛헛한 외로움을 느꼈었다.


나는 그녀를 통해 맑은 기운, 밝은 기운을 많이 받는다. 나보다 나이는 많지만 한참 어린, 아니 어린이 같은 감성을 가진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다. 넓은 바다에 사는 물고기처럼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사람이라 언제 다시 헛헛한 외로움을 겪어야 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함께여서 그저 좋다.


주변을 돌아보면 내가 보인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인생을 함께 하는 친구(또는 지인)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어떤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너는 사람 보는 기준이 확실해서, 너의 친구가 되려면 꽤 힘들어." 그런가? 생각해보니 맞는 말인 듯도 하다. 나는 누군가에게 쉬워 보이는 친구가 되고 싶지 않고, 내 친구들 역시 쉬워 보이는 사람은 싫다. 쉽다는 의미는 자신만의 기준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나는 약속을 잘 지키고, 믿음을 주며, 진정성을 가지고 서로를 존중해 주는 사이를 '친구'로 정의하며 살고 싶다. 그런 기준이 어려운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것으로 내 친구가 되기 어렵다면 굳이 친구로 두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보통의 내 친구들은 모두 그런 사람들이라 나는 자부한다.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간 친구처럼.


요즘 그녀와 일도 함께 하고 있다. 친한 사람끼리 일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혹여나 작은 오해로 멀어질 수 있고, 작은 다툼으로 그동안 쌓아온 우정이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다. 기준이 있다. 혹여 오해가 생겼을 때 진정성 있게 대화할 수 있고, 다툼이 있을 때 먼저 사과할 줄 알고, 삶의 비전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임을. 혹은 그렇지 않다는 판단이 들 때 진실되게 서로를 놓아줄 수 있는 친구라는 믿음이 있다.


내 주변에 그녀가 있다. 그래서 나는 당당하다.  

멋지게 자신의 꿈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질 줄 아는 용기, 순수한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 순수함을 꿈으로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줄 아는 마음, 흑과 백의 논리를 말하지 않는 포용력. 이런 친구가 내 친구다.  


어떤 친구를 두었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과 비전이 달라진다. 나 역시 친구 덕분에 꿈을 꿈으로 두지 않고 현실로 만드는 힘을 얻는다. 친구 덕분에 다른 세상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지게 된다. 내게 너무나 소중한 보석이라 쉬이 말하고 다니지 않지만 오늘만은 이 보석을 자랑하고 싶다. 내 인생에 오래도록 보석으로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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