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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주는 사람은 늘 가까운 사람이다.

#상처#마음#가까운 친구

by 지금이대로 쩡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Cezanne and I)>의 주인공이며 피카소가 유일한 스승으로 추대했던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 불린 화가 폴 세잔의 이야기다. 세잔은 30년 이상 우정을 나눴던 친구 에밀 졸라에게 크게 상처받고 마음을 닫았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함께하며 서로를 지지하던 사이였다. 졸라의 성공과 당대 미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세잔의 처지가 달라지면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철학자 하인리히 리케르트(Heinrich Rickert)는 “진정한 우정은 앞과 뒤, 어느 쪽을 보아도 동일하다. 앞에서 보면 장미, 뒤에서 보면 가시일 수는 없다”했다.


뒤에서 본 졸라의 모습은 가시였다.


세잔은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인정받고 위로받고 싶어 했다. 졸라는 ‘위대한 화가가 될 개성을 지녔지만 아직 기법을 탐구하느라 몸부림친다’고 혹평했다. ‘그림을 그리다 죽을 것’ 이라며 실력이 뛰어난 세잔이 미술계에 인정받지 못하도록 시기하며 질투했다. 졸라는 세잔을 주인공으로 천재성이 있음에도 끝내 펼치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의 책을 펴냄으로 두 사람의 우정은 끝이 났다.



잘 모르는 사람이 주는 상처는 새털의 무게만큼 가볍다. 잘 모르면서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 버리면 그만이다. 가까운 사람이 주는 상처는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무거운 무게로 가슴을 파고든다.


뻣뻣한 가시 털로 온몸이 덥혀 있는 북극 동물 ‘호저’가 있다. 몸을 밀착하고 추위를 이겨내려면 찔려서 아프고, 떨어져서 추위를 견디기에 북극 날씨는 너무 춥다. 이들은 밀착했다 떨어졌다 하게 되는데 서로를 찌르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거리를 찾아낸다. 이러한 현상을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호저 딜레마’라고 했다. 인간관계에서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상처 입히는 심리적 갈등을 빗대어 사용하기도 한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호저처럼 가시로 찔러 상처 줄 수 있음을 알면서도 날 선 말과 행동을 한다. 찌르지 않을 만큼의 적절한 감정이 아닌 많은 기대나 바람을 가지고 대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을 둔 친구가 학부모 참관 수업을 갔을 때 일이다. 참관 수업 주제는 ‘인체 사용하는 법’이었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향해 물었다.

“손은 어디에 사용하나요? 아는 사람!”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어서 기회를 얻었다.

“엄마가 저를 때릴 때 사용해요! 매일매일 때려요!”

“…”


아이의 엄마는 친절하고 다정다감하기로 소문난 같은 학교 선생님이다. 학부형 사이에서도 자녀 담임이 되면 박수 칠 정도로 평가가 좋은 분이다. 그런 그녀도 자신의 가족에게만은 많은 기대와 바람을 가진 엄마일 뿐이었나 보다.


한동안 놀림받은 아이의 엄마인 선생님은, 인체 사용법 중 마음 사용법을 가장 잘 알아야 하지 않을까.


찌르지 않을 적당한 감정과 배려 깊은 행동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저장해두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거리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같아야 한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객관적이며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서 상처 주는 행동은 자신의 마음을 이중적으로 사용하는 행동이다.


프랭키 바이론(Frankie Valli)은 “존중은 평상복 차림의 사람”이라고 했다.

옷을 차려 입고 만나야 할 남이 아니라, 자주 만나고 가까이하는 사람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가까운 사람에게 뻣뻣한 가시털로 찌르는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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