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극복하면 된다.
시아버님은 오토바이를 타고 농사일을 다니셨다. 아빠 오토바이 뒤에 타보는 게 어릴 때부터 꿈이었다. 어렵게 오토바이 뒤에 태워 달라 부탁드렸는데 너무 기뻐하시며 흔쾌히 태워 주셨다. 나는 ’ 앞자리의 아빠’를 원했고, 시아버님은 ‘뒷자리의 며느리’에 행복한 표정이셨다. 허리를 꽉 잡고 시골길을 달렸다.
너무 행복했다. 그때 맡은 아버님의 땀냄새가 세상 어떤 향기보다 향기로웠다. 그 향기는 아직도 마음속에 짙게 남아 있다. 한 번씩 밑도 끝도 없이 나는 그 향기 때문에 눈물을 훔치는 날이 있다. 그해 가을 갑자기 교통사고로 우리 곁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아빠가 오래 아프셨고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님을 뵙고 너무 좋았다. 내가 꿈꿔온 아빠의 모습이었다. 비록 어려워 금방 다가가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안 그랬다. 집안을 지켜주는 기둥 같은 존재로 느꼈고 계시는 것만으로 든든했다. 시댁 식구들이 가장 많이 아팠겠지만 그런 분을 잃고 나서 나는 내 방식대로 그리움을 가지고 살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산다.
사랑이 오는 경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 생각하겠지만 상처가 있기 때문에 사랑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 삶이다. 그러니 사랑이 오면 사랑을 하고 슬픔이 오면 슬픔을 느끼며 살면 된다. 사랑만이 삶을 지탱해주는 감정은 아니다. 지금 당장 불안하고 아프다고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도피하고자 한다면 미래를 잃게 된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다양한 경험은 삶을 풍족하게 살찌울 테니 많은 경험을 해라.”
‘다양한 경험’ 속에 상처를 제외하고 경험하라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느끼고 살아가라는 뜻이다. 기쁨도, 아픔도, 슬픔도 모두 느껴봐야 진정한 경험이 된다. 그러한 경험이 자신을 지탱해주는 힘이 된다.
시아버님이 갑자기 떠나고 가족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특히 시어머님은 강한 척하셨지만 그렇지 않았을 것을 안다. 아빠를 먼저 떠나보낸 엄마의 연세와 비슷했다. 그때 나는 어려서 생각 못했는데,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한동안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무서웠다 말씀하셨다. 시어머님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 것은 두 분은 참 많이 사랑하며 살아온 것을 느꼈다. 아버님이 어머님을 꼬집으며 장난치는 모습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사랑했기 때문에 이별도 아프다. 아픔의 무게를 계산할 수 없지만 사이가 좋았던 부부의 이별은 그만큼 고통스럽다. 어머님은 그래도, 꿋꿋이 버티며 지금을 살고 계신다. 열심히 사랑하셨고, 열심히 이별하셨고, 지금 다시 열심히 살아가고 계신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