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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Jul 05. 2018

'관찰'이 힘이 있네요! 그죠?

- 남편의 하루 , 눈(마음의)을 뜨면 보이는 것이 많다. - 


오늘 재미있는 일이 있었어요. 지하철 10번 출구 계단에, 안보이던 노숙자가 한 명 있는 거예요.  무릎 앞에 계란판을 두고 돈을 줘도 좋고 안 줘도 좋고~ 하는 자포자기한 표정 있죠? 그렇게 앉아 있더라고요.  이른 아침에 그렇게 앉아 있는 그분 표정이 안쓰러워서 천 원짜리를 꺼내 줬어요. 돈을 보자 갑자기 허리를 펴고 일어나 앉더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하면서 90도 인사를 하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좀 더 줄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그 사람을 보면서 천 원이 이렇게 가치가 있구나 생각했어요. 우리의 천 원과 그분의 천원은 천지차이일 거 아니에요. 자포자기한 표정을 보고 그냥 지나쳤으면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을 텐데 그렇게 밝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까 주길 잘했다 싶더라고요. 표정이 마음에 걸려서 줬거든요. '천 원'  잘 썼다~ 싶어서 하루 종일 기분이 좋더라고요. 


퇴근하는 길에도 혹시나 그대로 있나 하고 봤는데, 아이고~ 막걸리를 병나발 불면서 앉아있는 거예요. 아침에는 가치 있게 썼다고 생각했던 천 원이 저렇게 막걸리로 쓰인 것인가 생각하니 좀 안타깝더라고요. 하루 종일 저러고 앉아서 돈 받아 막걸리 사 먹고, 돈 받아 막걸리 사 먹고 했을 거 아니에요. 


혼자 속으로 씁쓸하게 웃으면서 퇴근했어요. '가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면서요. 

처음에는 돈을 괜히 줬나 싶더라고요. 근데 생각해보니까 다음에도 한 번씩은 줘야겠어요. 돈 받고 막걸리 먹을 생각하니까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어요. 그러니까 표정이 바뀌면서 90도 인사를 했겠죠. 좋은 곳에 썼으면 좋았겠지만 그분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데 썼으면 그게 가치죠. 그죠? 


당신이 요즘 '관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서 이곳저곳 관찰하다 보니까 노숙자를 봤어요. 덕분에 그분은 막걸리 사 먹고 나는 가치를 생각하게 됐고, '관찰'이 힘이 있네요! 그죠?


눈(마음의)을 뜨면 보이는 것이 많다. 보이지는 앉았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서 봐주길 바라는 많은 것들주의 깊게 '관찰'하면 보인다. 그것이 가치가 될 수도,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오백 원짜리 동전일 수도 있다. 나는 요즘 사물, 사람, 마음... 들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을 습관화하려고 한다. 보고 듣고, 보고 듣고. 조용히 주의 깊게 바라보니 중요한 것, 중요하지 않은 것, 필요한 것, 필요하지 않은 것이 예전보다 더 분명하게 보인다. 남편 덕분에, 차분히 바라보는 것의 힘을 새삼 느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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