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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Jun 30. 2018

이제 내 펜들은 완벽한 조합을 이룬다.

나만의 어벤져스

- 테이핑된 분홍 펜 -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인 볼펜과 노트(다이어리)다. 그중 5~6년을 함께 한 분홍색 사색 펜은 절친한 친구다. 워낙 필기감이 좋은 아이라 펜심도 많이 사뒀다. 3년 전 머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마음을 아프게 한 아이. 버리지 않고 테이핑 해서 사용하는 것을 보고 옆자리 매니저님이 '그냥 하나 사지~'하더니 30분에 걸친 대수술에 들어가 주었다. 내 표정에서 버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읽은 것일까? 새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깔끔하게 고쳐줬다. 약한 상태이니 조심해서 사용하라는 그의 표정에서 큰 수술을 치른 피곤함이 묻어났다. 덕분에 꽤 오랫동안 분홍 펜은 머리를 잘 부여잡고 살았다.


2년 전 두 번째 사고가 난 후 붙일 재간이 없던 나는 테이핑을 해둔 채 지금껏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런 분홍 펜을 보는 사람마다 '다른 걸 쓰던지 그냥 하나 사라'고 말한다. 내게 펜의 필기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일이 설명할 수 없어 이 볼펜이 좋아서 그런다 하고 만다. 모든 업무가 노트에 정리되는 나로서는 쉬이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볼펜이다. 누구에게나 중요한 것은 있기 나름이니까.

- 업무 다이어리 -

최근 다시 일을 시작하며 테이핑 된 분홍 펜과 오랜만에 조우했다. 이젠 자신을 놓아달라는 신호인지 이전에는 문제가 없던 목이 자꾸만 밀려 나와 필기 중 손을 탄다. 새것을 구매해볼까 문구점을 들러본다. 역시 동네 문구점에는 없다. 찾아 헤맨 지 한 달 만에 대형 문구점에 가서야 하나 남은 펜을 만날 수 있었다. 정든 아이를 보내는 마음이 아플까 싶었는데 모양도 색깔도 같은 펜을 만나고 나니 미련 없이 이별을 선택하는 것은 인간의 간사함이랄까?


이제 내 펜들은 완벽한 조합을 이룬다. 나만의 어벤져스.

- 어벤져스 -
* 4색 펜(분홍) : 새것이지만 내게는 새것 같지 않은 익숙한 펜이다. 테이핑 없이 온전하다.
* 3색 펜(그린) : 분홍 펜을 서포트하기 위해 존재하는 같은 브랜드 제품. 부러진 분홍 펜이 어느 날 떠날까 싶어 사두었던 펜이다.
* 4색 펜(꽃분홍) : 내 다이어리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던 '클라이언트'님이 이별 선물로 준 문구함세트에 함께 있던 펜으로 '만원'의 몸값을 자랑한다. 그의 마음이 고마워 팀에 합류시켰다. 오래 써서 펜심을 사러 가야 하는데 아직 파는 곳을 못 찾았다. 정녕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나가야 한단 말인가?
* 형광 펜 : 형광펜은 꼭 필요하다. 중요한 업무에 칠을 해줘야 하니까.

새로운 펜을 맞이하고 나니 안정된 느낌이다. 내게 있어 볼펜은 업무의 승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아이템이다. 분홍 펜의 목 밀림 현상은 어벤져스에서 아이언맨이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상황이랄까?(하하) 연필꽂이에 꽂힌 펜들 중 손에 잡히는 데로 사용한다는 것은 일에 올인하지 않은 상태, 필통을 들고 어벤져스를 출동시킨다는 것은 본격적으로 일에 집중하려는 상태, 나만의 규칙이다.


아이언맨이 새로운 슈트를 입고 왔으니 어벤져스는 완벽히 세팅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해볼까?


누군가는 이런 나를 까다롭다고 표현했다. 까다롭다는 표현은 당신 표현, 나만의 규칙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나의 표현. 음... 까다롭다기보단 유니크한 사람이라고 표현해 주면 안 되겠니?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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