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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Jul 01. 2018

나는 지금, 허당으로 정의되어도 좋다

"김희정, 다시 봤어. 허당이야 허당!"

나를 잘 아는지 모르는지 몰라서 친구인지 지인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어떤 사람이 말했다.

기분 상한 건 절대 절대 아니다. 하하하~


나는 버스나 지하철에 대한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역을 어떻게 가야 하느냐 물으면 몇 호선을 타고 앞쪽인지 뒤쪽인지, 어느 역에서 갈아타야 하는지 알려줄 수 있었다. 자주 가는 지역은 출구 번호도 알려줄 수 있을 만큼의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지하철보다 버스를 좋아해 노선들을 많이 알고 있어 의식하지 않아도 생일을 말하듯 어디로 가는 버스가 몇 번인지 말해줄 수도 있었다. 이사를 많이 다닌 덕분에 여러 동네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언제부터인가, 지하철을 거꾸로 타거나 흐릿해진 의식을 믿고 탔던 버스가 다른 동네로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나를 불신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미미했다. 모르는 동네로 향하는 버스를 타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더 이상은 어렵겠다 판단하고 스마트폰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나를 믿지 않기로 결심(까지)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잘못 타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를 나누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버스도 잘못 탔다. 결국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내게 친구는 말했다.

“총명한 쩡 어디 갔어?”

“아... 어수룩한 쩡으로 다시 태어났어.”

입으로 말하고 나니 나는 이제 어수룩한 쩡으로 정의되어졌다. 부여잡고 있던 '총명'을 놓아주고 나니 책망하던 마음도 조금 옅어졌다. 어수룩, 왠지 이 말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나 총명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인정하자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럴 수도 있지. 인생, 원래 돌고 돌아가는 거야.' 쿨한 척하다 보니 쿨해지고 말았다.


일을 할 때 매섭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 나의 변화를 느끼기 시작한 지는 오래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나는 예민하게 느끼고 있다. 메모를 잊거나, 일정에 맞추지 못한 팀원의 업무를 잊기도 한다. 다이어리에서 업무를 발견하고는 너에게 시간을 더 준 것이라는 말로 너그러운 척한다.

어느 날 팀원이 말했다.

“요즘 좀 여유 있어 보이세요. 좋은 일 있으세요? 홍홍홍~”

“어? 으응~ 아니 뭐 좋은 일은 아니고~”

업무를 보던 나사 역시 느슨해졌음을 말하지 않았다. 버스나 지하철을 잘못 타는 것처럼 일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에 대해 뭐라 표현해야 할지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저 나이 들어 부드러워졌나 보다 하는 시선을 즐기기로 했다.


'허당'

그래 나는 허당이 맞다. 영민하게 반응하던 머리도, 눈도 느슨해지고 있다. 실수할 거라는 의심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일에서 실수가 일어나고 매섭게 일을 처리하던 카리스마도, 카리스마가 뭐야? 할 만큼 잊어간다. 한때는 이런 변화가 서글퍼 떠나려는 영민함을 놓아주지 못한채 미련스럽게 부여잡고 있었다. 한데 '허당'이라 정의받고 나니 내려놓아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최근 인체 기호도 조사를 했다. 시각, 청각, 신체 감각, 내부 언어의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크게 차이 없이 거의 일직선의 결과가 나왔다. 한쪽으로 발달해 있던 인체 기호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유연하게 발달해 차이 없는 그래프가 나온 것이라는 답을 받았다. 그것은 다른 곳에서도 비슷할 것이라는 말에 그렇다면 내 '총명'은 '어수룩'으로 하향평준화가 되는 것인가? 하고 놀랐지만 이내 생각이 고쳐졌다. 하향 평준화된다는 것은 단편적인 생각일 뿐 다른 곳에서 여유로움과 지혜를 얻고 있다면 상향평준화가 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 아닌가. 착각일지라도 이렇게 생각하련다.


그러니 나는 지금, 허당으로 정의되어도 좋다. 둥글둥글 살면서 '총명'과 '카리스마'를 발산할 다른 곳을 곧! 찾아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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