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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Jul 02. 2018

나의 세포는 살아있고 꿈틀거리고 있음을...

나만이 알 수 있는 이 짜릿함.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났다.

크고 두꺼운 문을 밀고 들어가 얕은 두 개의 계단을 내려간다. 대리석으로 깔린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그를 만났다.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그를 알고 있으니 친밀한 느낌일 테지. 인사를 마치고 고개를 들고 보니 그의 등 뒤는 천정까지 책으로 가득하다. 책을 따라 움직이는 내 눈이 휘둥그레 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려오며 밟은 두 개의 계단보다 좀 더 두꺼운 반대편 계단 서너 개를 밟고 올라서자 더 많은 책들이 쌓여있다. 내 눈은 책이 꽂힌 마지막을 찾지 못한 채 다시 그의 얼굴로 돌아왔다. 매일 책은 얼마나 읽느냐, 책을 쓸 때 어떤 기분을 느끼느냐 질문하는 나를 보는 그의 눈이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를 보는 눈빛이다. 꽤 오랜만에 이런 질문을 받아본다는 듯.


지금은 책 읽는 시간이니 끝나고 이야기 하자는 그가 책을 내민다. 매번 읽을 때마다 감동받는 책이며 머리를 비우기 위해 자주 읽는 책이니 읽고 있으라 한다. 검은색 하드커버에 법전만큼의 두께를 자랑하는 책이다. 펼쳐보니 영어 원서다. 뜨악! 한데 사용된 폰트가 크고 사진이 많이 실려 있어 다행이다 싶다. 이 책을 읽으려면 작가님 집에 하루 이상은 있어야겠다는 내 말에 웃는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음악도 나온다. 한국 역사책이다. 오!


책을 펼쳐 들고 의자에 앉는다. 손에 쥔 책 보다 책을 읽는 그를 관찰하는 것이 더 흥미로웠다. 눈빛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재미없느냐 묻는다. 너무 재미있지만 작가님을 보는 게 더 재미있다는 내 말에 그는 미소를 짓더니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린다. 작가님은 여전히 루틴한 하루를 보내나요? 하고 묻는 내 몸이 다리부터 거품처럼 사라진다. 어? 어? 왜 이러지? 꿈에서 깬다.


거품처럼 사라진 몸이 공간 이동을 해 온 듯 침대에 누워있는 나의 육체를 느낀다. 조용히 눈을 떴다. 우리 집 천정이 맞다. 꿈이라니... 아쉽다.


토요일부터 새롭게 시작한 수업에서 온몸의 세포가 일어남을 느꼈다. 다른 곳에서 들었던 비슷한 강의에 실망한 탓에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한데 수업 시작 5분 만에 더운 여름, 청량한 바람을 맞은 기분이랄까? 다음 강의가 기대될 만큼 재미있었다. 과제가 버거웠지만 그 시간마저 즐길 수 있었다.

일요일 밤, 잠들기 전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다시 한번 주의 깊게 내용을 점검했다. 그리고 모임의 멤버가 보내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인터뷰에서 칠순이 됐음에도 매일 하루를 새로운 시작이라 말하는 그를 보고 가슴 찡한 울림을 받았다.


여러모로 나의 세포는 살아있고 무언가를 향해 꿈틀거리고 있음을 느낀 주말이었다.


잠자리에 들었다. 새로운 수업에서의 청량감과 정경화님이 매일 11시간씩 연습했다는 열정에 감동해 나의 모닝 루틴을 벤치마킹한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났나 보다. 기분 좋은 꿈을 꾸고 나면 왠지 하루의 시작이 상쾌하다. 꿈속에서 느낀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미숙한 글솜씨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나는 안다. 내가 왜 꿈에서 그를 만났고 그의 책들에 감동하며 그가 건네준 책을 보고 있었는지...


더없이 짜릿한 하루의 시작이다. 나만이 알 수 있는 이 짜릿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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