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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Jul 25. 2018

작은 관찰이 큰 마음이 될 수 있음을 알게됐다.

'관찰' 프로젝트 -사람 편 -

1. 그녀에게 신발은 어떤 의미일까?

봄처럼 화사한 원피스를 입었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직장인 치고는 옷이 꽤나 고급스러워 보였다. 발걸음 역시, 늦은 오후 친구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처럼 느긋하고 여유로웠다. 고급스러운 원단을 봤을 때 저렴한 옷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녀가 입은 원피스는 명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나는 명품 브랜드를 알아차릴 만큼의 눈은 가지지 못했다.

오른쪽 어깨에는 프** 금장식이 박힌 크로스백을 메고 있었다. 크로스백을 크로스로 메지 않고 오른쪽 어깨에 살포시 걸쳐 놓은 모습이 원피스와 아주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머리는 어깨 정도의 길이에 웨이브가 살짝 들어간 염색되지 않은 내추럴 흑갈색. 키는 160이 안돼 보이는 아담한 사이즈에 45킬로그램 정도의 가벼운 몸매. 뒷모습으로는 20대 여성으로 짐작됐는데, 앞에서 보니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화장기 없는 자연 그대로의 얼굴이다. 잡티 하나 보이지 않는 꽤 고급스러운 얼굴이다. 표정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지만 머리부터 원피스까지 고급스럽고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었다.

눈을 내려 신발을 보았다. 의외의 조합이다. 검은색 고무 플랫폼 샌들이다. 일명 찍찍이라고 하는 것이 부착된 샌들의 상태는 과하게 낡았다. 완벽하게 언밸런스한 모습이다. 그녀가 잰걸음이 아닌 평온한 오후 걸음으로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낡은 샌들 덕분이었다. 그녀의 낡은 샌들이 옷과는 대조적이었지만 내가 보기에 그녀의 완벽은 신발에 있어 보였다. 평온하게 아침 시간을 즐기며 걸을 수 있는 여유를 주는 신발.

나는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비싸 보이는 원피스와 명품 가방은 남을 위해, 낡은 샌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나 싶었다. 아무리 남의 시선을 즐기기 위한 옷차림을 하더라도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발 편한 신발. 그녀를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언밸런스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남의 시선을 위한 옷차림이 없는지, 발 편한 신발을 숨기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은 없는지 되돌아보았다. 나를 위한 편한 샌들을 절대 잊지 않고, 그것을 부정하지 않기 위해 자기 관리에 소홀하지 않아야겠다, 그런 다짐을 한 아침이었다.

2. 검은색 망사 가방의 용도는 무엇인가?

이른 출근을 하던 날. 사람은 많고 환승역 계단은 좁다. 촘촘한 콩나물 사이를 비집고 자리를 잡으며 계단을 올라가려면 앞사람 발을 쳐다보며 가야 한다. 연분홍 샌들이 참 이쁘구나. 곱디곱다. 9센티 힐이라는 게 함정이지만 나도 신어보고 싶을 정도로 이쁜 구두다. 계단을 다 오르고 그녀를 보려 고개를 드는데 힐 덕분인지 키가 꽤 커 보인다.

민소매의 짧은 줄무늬 원피스를 입었다. 원피스는 일반적으로 쉽게 구매할 수 있을 정도 수준. 오른쪽으로 맨 크로스백 역시 어떤 장식도 없는 유광 가죽 제품이다. 일명 에나멜 가방. 이른 시간임에도 그녀의 걸음은 늦다. 높은 굽과 오르막 환승 길이 그녀를 더 무겁게 누르는 듯하다. 나 역시 천천히 그녀의 발걸음에 맞춰 걸어간다. 일단, 전체적인 느낌은 일반인이다. 원피스는 엉덩이를 조금 내려와 마무리된 짧은 미니 스커트였다. 너무 짧은 거 아닌가 싶다 생각하는 찰나, 치마 끝자락에 묻은 어젯밤 흔적이 보였다. 걸쭉한 회식에서 만났을지도 모를 덩어리 진 음식물이다. 형체를 알 수 없는 모습으로 짓눌린 그것은 그녀가 어젯밤 소주에 닭발을 뜯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닦아 주고 싶다.  

그녀의 어깨에는 크로스백과 함께 검은색 망사 가방이 하나 더 있다. 보통 수영장 갈 때 들고 가는 가방인데 무슨 이유인지 둘러맸다. 가방 안이 훤히 보이니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으로 그녀가 어젯밤 과하게 달린 시간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어제 입었을 법한 구겨진 흰색 면 카디건. 술 취해 둘둘 말아 넣은 듯 한 모양새다. 음식물도 여기저기 묻어있다. 분홍색 안대. 무슨 이유로 거기 합류했는지 묻고 싶을 만큼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다. 작은 화장품 파우치. 파우치 역시 투명하게 자신의 내장을 모두 보여주고 있었다. 파우치에 포함되지 않고 망사 가방 안에 마구 던져 넣은 립밤, 쓰다 만 화장지... 까지 보다 눈을 돌렸다.

그녀는 도대체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집에서 출근하는 길일까? 집으로 가는 길일까?

뭐가 되든, 자신의 시간은 헛된 것이 없음을 그녀가 치맛자락의 음식물을 때며 짜증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녀를 지나쳐 갔다.


한편으로, 언젠가 술 취한 직장인에 대한 글을 쓸 일이 있다면 그녀를 모티브로 써야겠다 생각했다.

3.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니?

까만 피부의 외모를 보고 외국인인가 했는데 한국말을 쓴다. 자기 머리보다 커 보이는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도록 오픈된 가방을 다리 앞에 던져둔 지하철 옆자리 여자다. 손발톱은 정성 들여 네일샵을 다녀온 흔적이 있고, 옷차림과 가방 안의 물건으로 봐서는 수영장을 다녀오는 길 같았다.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누군가에게 여러 주제에 대해 짧게 짧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대화라고 하기에는 일방적인 전달이었다. 주제를 봐서는 '밑도 끝도 없는 말'이었다. 통화를 하고 있는 것이 맞나 싶어 건너편 창문으로 그녀를 살폈다. 이어폰이 보이지 않는다. 휴대폰을 두 손으로 든 체 검색을 하고 있었으니 이어폰이 있었어야 대화가 됐으리라. 블루투스 이어폰인가? 아니다. 머릿결이 귀를 덮지 않아 보이는 귀에는 화려한 귀걸이만 달려 있을 뿐이다.

그녀는 혼자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 나~이거 사고 싶어. 이거 입으면 진짜 이쁠 것 같은데.~히잉"
"여기 놀러 가야겠다."
"어? 이런 게 있었어? 이거 뭐지?"
"아! 이거야! 이런 거 말하는 거야."
"나 다 알아.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그냥 이동하고 있어."
"이거 너무 재밌다. 히히히~ 정말 재미있는데?"
"아직 잠실이야!"
"이런 이야기는 재미 하나도 없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30분 내내 그녀는 이런 대화, 아니 말을 했다.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그녀는 도대체 누구와 대화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녀에게 마음 터 놓고 실컷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나타났으면 싶었다. 마음의 결핍이 지하철에서 혼자 이야기하는 것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최장순의 <기획자의 습관>이라는 책을 읽고 일상을 관찰하는 혼자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세상은 다양한 사람이 있고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세세하게 관찰해 보면 생각지 못한 일도 많다. 오페라, 아리아, 재즈, 연주곡, 교향곡이 흘러나오는 정육점 사장님의 취향처럼 말이다. 


사람에 대한 관찰 한 달 동안 대부분은 그냥 지나쳐 가는 사람들이었다.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이겠지. 그 많은 사람들 중 몇몇은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고, 일면식 없지만 그를 위한 마음의 기도를 하게 했다. 작은 관찰이 큰 마음이 될 수 있음을 알게 해 준 경험이다. 


앞으로도 가끔씩 스마트폰이나 책을 떠나 사람들을 보며 나만의 인사이트를 얻고, 그들을 위한 작은 마음도 전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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