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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Oct 22. 2018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안방 TV 앞에 엎드려 글자를 썼다.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ㅎ

 갓 초등학생이 되어 처음 받은 숙제였지만 드디어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설렘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써 내려갔다.


 우리 집 책장에는 하드커버로 된 고전 전집이 있었다. 언니들이 읽었고 사촌 오빠가 자주 찾아와 빌려갈 만큼 많았는데 나도 글자를 배우면 저 책을 읽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물론 그 책을 읽은 것은 꽤 오랜 후의 일이지만 글만 읽으면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두꺼운 하드커버 속에 세로로 써진 작은 글씨를 읽어 내려가는 언니 오빠들이 왠지 멋있어 보였다.


 환경이라는 것은 삶의 방향을 바꿔주기도 한다. 아주 시골 동네였던 우리 집에 고전 전집이 있었다는 것은 순전히 아빠 덕분이다. 분명 누군가의 부탁으로 사 왔을 테지만 우리에게는 엄청나게 영향을 준 책이다. 그리고 그 책이 불쏘시개가 되지 않고 소중하게 다뤄졌다는 것이 '책'에 대한 마음을 잡아 주었다. 작가에 대한 위대함도 포함해서.


 글씨를 배우고 나서 2학년이 되자 일기 숙제가 생겼다. 교육의 단계라는 것은 참으로 지능적이다. 결국 5년 내내 같은 숙제를 낼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처음에는 그림일기가 시작이었다. 그림일기라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그림을 그리고 두 세줄 정도만 쓰면 됐다. 물론, 방학 때 밀린 일기는 곤욕이었지만 그마저도 즐겁게 했던 기억이 난다.


 3학년인가? 4학년인가? 그림일기에서 일반 일기로 옮겨가면서 글쓰기의 압박이 커졌다. 처음에는 많은 줄을 채우고자 자간, 행간이 넓어지기도 했지만 익숙해지고 나니 줄 많은 공책이 좋을 만큼 일기 쓰기에 공을 들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일기 숙제는 없어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일기를 썼고 지금도 쓰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습관이 되었고 그 시간이 내게는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써놓은 일기장이 아직도 엄마 집 책상에 있다. 가끔 그 일기장을 열어 보면 생각이 나는 일도, 생각나지 않는 일도 있지만 순수했던 나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일기를 쓰고 책을 가까이해 왔던 나는 '글쓰기'와는 늘 가까운 삶을 살았다. 글짓기 대회, 동시 대회 등 글을 써서 하는 대회는 모두 나갔다. 상도 가끔씩 받아오곤 했다. 고등학생 때 '가족'에 대한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는데, 그때 내가 쓴 초안에 선생님이 그어준 빨간펜 원고는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나는 글을 썼고, 일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그것이 대단한 작가의 길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내 삶과 함께 했던 글쓰기다.

 

 그러다 글을 써야겠다, 아니 책을 출간해야겠다는 다짐으로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책 집필은 마무리했다. 하지만 역시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기에는 엄청나게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 후 욕심 내지 않고 '책을 내기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한 글쓰기'를 하기로 했다.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쓰다 보면 좀 더 나아지고 나아져서 밥 한 끼 맛있게 먹듯 자연스러운 글이 써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전에도 누군가 왜 글을 쓰느냐 묻는 말에 대답한 글을 퍼블리싱 한 적 있지만 내게 글 쓰는 '왜'라는 것이 필요 없다. 이렇게 삶에 녹아져 있고 일부분이 되어있다. 매일같이 이른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는 이유는 '그저 좋아서!'라는 대답외에 할 말이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힘든 줄 모른다.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고 퍼블리싱하는 일이 지금 내 삶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 밥을 먹을 때보다, 일을 할 때보다,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 때보다, 글을 쓰는 나는 반짝반짝 빛난다. 그러니 글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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