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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Nov 04. 2018

개발자와 삼청동 귀걸이

<그 시간의 기억>

 "아!!!!!!!!! 스트레스!!!!!!!!!"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즈음 혼자 삼청동으로 향했다.


 “기사님 삼청동이요!!!”     


 택시는 삼청동을 향해 둥근 원을 그리며 미끄러져 갔다.      


 5년 전 광화문에서 프로젝트를 할 때였다. 늘 거래하던 회사,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20대 시절, 친한 오빠가 차린 회사의 유일한 직원이었던 내가 청춘의 에너지를 쏟아내던 곳이다. 반년이 넘도록 마이너스 통장으로 지내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회사의 성장을 보지 못하고 떠났다.


 의리에 죽고 사는 남매처럼 지냈던 우리였기에 떠난 후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의리없이 떠난 못된 동생'으로 살았지만 때가 되면 늘 맛있는 거 사주겠다며 홍대로 불러내 준 오빠.


 혼자 두고 떠난 마음의 빚이랄까? 의리랄까? 프리랜서 전향 후 프로젝트가 끝나갈 즈음이면 보고처럼 연락한다. "나 곧 쉽니다."


 일정이 맞지 않아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면 “야! 너는 오빠네 회사 일을 해야지!!!” 하며 농담 반 진담 반, 나 역시 “오빠가 영업을 못하니까 그런 거 아냐! 그럼 나는 뭐 손가락 빨며 기다려요? 아직~도 영업이 그 모양입니까?”하며 농담 반 진담 반 핀잔의 말을 던진다.


 그의 영업력에 놀라고, 사업수단에 놀라고, 삶을 대하는 자세에 놀라 좋아하고 존경하는 오빠다. 그런 오빠네 일은 내 일처럼 하게 된다. 몸 사리지 않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돈에 구애받지 않고 집중한다.


 광화문 프로젝트 역시 두 달을 쉬면서 기다렸다. 멤버들이 소집되고 일이 시작됐다. 대기업 프로젝트이긴 했지만 인문학 콘텐츠를 다루는 일이라 난이도로 보면 '하'였다. 개발자도 기본만 하면 문제없을 프로젝트.


 프로젝트는 5개월 중 한 달이 지나고 있었다. 개발자의 상태에 의심이 가기 시작한 것은 그가 들어온 지 2주 정도 흘렀을 때였다. 이번 프로젝트는 일도 아니라는 듯그의 자세에 '의심'했고, 야근하며 바삐 지내던 그의 결과물이 없음에 '확신'했다.


 프로젝트를 담당하던 영업이사에게 개발자 교체를 요청했다. 다른 프로젝트에서는 문제가 없었다, 고급 개발자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며 교체해줄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다. 개발자 교체가 불가능하다면 책임자인 내가 짐을 싸겠다고 선언하자 이틀 후 교체 개발자가 투입됐다.


 그는 내 질문에 "반응형이 뭐예요?"라고 되묻는다. 반응형 프로젝트에 반응형을 모르는 개발자라니!!! 영업이사는 개발자가 없어서 급하게 구했다는 변명을 내놓는다. 알아보니 친인척 회사에서 '웹'을 전혀 모르는 하드웨어 개발자를 보내온 것이다. 세 번째 보내준 개발자는 본인이 할 수 없는 일이라며 10분 만에 건물을 떠났다.


 "아!!!!!!!!! 스트레스!!!!!!!!!"


 프로젝트 곳곳에 남을 책임자 '김희정' 이름을 걸고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오빠네 회사 일이기 때문에 더 긴장하고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프로젝트는 이미 한 달 반이 지났고 개발이 시작되어야 할 시점에 개발자가 없다. 시간은 흐르고 내 마음은 타 들어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의 점심시간, 나는 삼청동을 걸었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물이 왜 이렇게 아픈지, 화살이 내려와 가슴을 찌르는 기분이었다.


 '개발자... 개발자... 개발자...'


 걷고 또 걷는다. 가을길의 삼청동에는 떨어진 낙엽이 많다. 그것들을 밟으며 되뇐다.


 '영업이사... 영업이사.. 영업이사...'


 길 끝에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자태를 뽐내는 주얼리 가게를 발견했다. 주저 없이 들어가 귀걸이를 골랐다. 퀭한 얼굴에 화려한 귀걸이를 하자 미소 짓지 않으면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결국 나는 웃었다.


 그날 밤, 모두가 퇴근하고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전화번호를 뒤졌다. 10년 전 함께 일했던 개발자에게, 아는 지인에게, 나를 키워준 사수에게까지 전화를 했다. 모두 힘들다는 대답뿐. 그러다 문득 떠오른 이름. '아!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언니 제가 내일 대표님한테 이야기해볼게요."
 "아냐 아냐~ 미안하지만 지금 통화하면 안 될까? 페이는 부르는 대로 드린다고 해."


 밤 10시가 되어서야 통화가 이루어졌고 다음날 딱 봐도 '개발자 같은 개발자'를 데리고 사무실을 방문해주셨다.

< 개발자  같은 개발자 >

  물론, 그 후에도 삼청동을 걸었다. 귀걸이를 샀고 낙엽을 밟았다. 내 보석함에 삼청동 귀걸이가 많은 건 함께 프로젝트를 했던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실.


 삼청동 덕분에, 귀걸이 덕분에 나는 그 프로젝트를 단 하루도 늦추지 않고 마무리하며 새벽 5시, 광화문을 떠났다.

< 삼청동에서 만난 귀걸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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