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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Oct 14. 2018

친구와 12시간 서울에서 놀아보기

 지난달부터 친구와 1박 2일 여행을 계획했다. 순천, 여수 여행이 마지막이었던가? 경주 여행이 마지막이었던가? 그곳이 어디가 되든 오랜만에 예전처럼 둘이서만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며칠 전 친구가 "이번 주말여행은 어떻게 되는 거냐?" 묻는 순간 약속이 떠올랐다. 아차! 지난주에도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기차를 알아보네 숙소를 알아보네 하다 망각의 세계로 보내버렸다.

 

 결국, 급하게 여행지를 찾지 말고 서울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평소처럼 점심 먹고 급하게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 하루를 보내자는 것이다. 매번 점심시간이 지나면 마치 신데렐라의 유리구두 돌려주러 가듯 부랴부랴 헤어졌던 우리.


 서울에서의 12시간.  '시작은 영화, 끝은 스카이라운지'만 결정하고 나머지는 만나서 발길 닿는 대로 가기로 했다.  


 토요일, 우리의 하루가 시작됐다. 하루 종일 걸을 생각에 운동화를 장착하고 집을 나섰다. 왠지 비장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였을까?


 모닝커피를 마시며 영화를 봤다. 암수 살인.

< 암수살인, 영화관 입구 >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본 것인지,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없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우리를 포함한 열명 정도의 관객이 있었다. 스크린 정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마치 우리 두 사람 전용 영화관인듯했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잔인하지 않아 조조로 보기에 불편함이 없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점심시간. 삼청동으로 이동했다. 어디로 갈까 하며 주위를 살피다 길게 줄을 선 식당을 발견했다. 줄이 길다는 것은 맛집일 거라는 생각에 무작정 뒤를 이었다. 줄을 서고 보니 브런치 카페. 음... 밥 먹고 싶지만 그래 한 끼쯤은 이런 것을 즐겨 보는 것이 좋겠다 싶어 기다리기로 했다.


 드디어 자리를 잡았고 음식이 나왔다. 배가 너무 고파서인지 음식이 맛있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너무나 맛있게 먹었다. 푸짐해 보였지만 먹어 보니 양이 부족하다는 친구는 다른 식당에서 2차 점심을 더 먹을 수 있다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양이 많았던 빵에게 굴복, 2차 식사는 불가능한 것으로 결정 났다.

< 점심 브런치 >

 점심을 먹으며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밖에서 내리쬐는 따뜻한 햇살, 그리고 좋아하는 친구, 맛있는 음식, 여유로운 주말. 이것 또한 '행복이구나' 싶은 감사의 시간이었다.

< 친구와 나 , 손모양은 왜 같은거니? >

 행복한 기분을 즐기는 그때, 먹을 때는 맛있게 먹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점점 배에 가스가 차올라 속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 집 빵, 자연발효 효소로 만든 거 아닌가 봐? 배에 가스 차지 않니???"하며 두 꼰대가 웃으며 브런치 카페를 나섰다.   


 소화도 시킬 겸 산책도 할 겸 삼청동 거리를 걷다, 도가니탕 간판을 보고,  

 저 집 깍두기 맛있겠지?
<깍두기>

 진심으로 먹고 싶어서 한 말이었다.


 도가니탕 집을 지나 촘촘하게 삼청동을 살펴보기로 했다. 예전만큼 물욕이 없는 나는 삼청동에 들르면 이것저것 구매했던 예전과 달리 그저 햇살을 맞으며 걷는 것 자체를 즐겼다.


 그렇게 길을 걷다 팥죽집을 발견했다. 유명하다는 삼청동 팥죽을 먹어보기로 했다. 사진만으로도 비주얼이 끝내주는 이 팥죽은 기대했던 것과 달리 설탕 덩어리다. 한 번쯤 먹어는 보되 두 번 먹지 않아도 될 맛, 식혜가 더 훌륭했던 '팥죽집'이었다.  

< 식혜와 팥죽>

 팥죽집을 나와 남은 삼청동을 걷고, 광화문을 지나 종로로 넘어갔다. 우리의 젊었던 시절 약속 장소였던 파파이스, 종로서적도 길거리 불법 복제 테이프 파는 아저씨도 없어졌지만 역시 밤이 되어가는 종로거리는 복잡하고 화려했다.


 그 시간이면 젊은 시절에는 술집을 찾았을 종로 한복판에서 지금의 우리는 마사지샵을 찾았다. 하루 종일 걸었더니 다리가 아파 잠시 쉬어야 했다. 마사지는 여행자의 필수코스. 이날의 우리는 서울 강북의 여행자이니 마사지 샵에 가 줘야겠지?


 발마사지를 받으며 꿀잠을 자고 나니 아침 기운으로 리셋되는 기분이었다. 역시 마사지는 우리에게 신의 한 수였다!


 가벼운 몸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요즘 유행을 선도하는 이베리코 돼지고기를 먹기로 했다. 깔끔하게 밥도, 냉면도 없이 정확히 고기 2인분 먹고 일어났다. 점심에 이어 팥죽, 식혜까지 먹었으니 더 이상의 음식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 이베리코 돼지고기 >

 드디어 하루의 끝, 스카이라운지가 있는 곳, 종로타워의 탑클라우드로 향했다.


 들뜬 마음에 들어간 33층 스카이라운지가 문을 닫았다는 비보에 허탈한 기분으로 돌아섰다. 과거의 기억만 가지고 무작정 찾아가다니, 이제 청춘의 기억을 꺼내 먹고사는 나이가 된 것인가 싶었다.


 허탈하게 돌아서 청계천으로 향했다. 마침 도깨비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소품,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는 작은 상점들을 구경하고 노래하는 길거리 가수, 연주자의 음악을 들었다.

< 청계천 행사 >

 청계천의 끝자락에서, 계획했던 스카이라운지를 대신해 커피 한잔 마시고 헤어지기로 했다. 카페에 앉아 잠시 쉬어 간다는 것이 행복에 대해, 삶에 대해, 인간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두 시간 반이 훌쩍 지나고 말았다.  

< 커피 한 잔 하고 가자 >

 이야기에 빠져있다 보니 취침시간이 지났다. 나의 눈이 게슴츠레 해지는 것을 느끼던 찰나, 곧 카페 문을 닫으니 나가 달라는 점원의 말에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들고 나왔다.


 이제 7차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1차 : 커피&영화
2차 : 브런치
3차 : 팥죽&식혜
4차 : 발마사지
5차 : 이베리코 돼지고기
6차 : 카페

 친구와 이렇게 긴 시간을 함께한 게 얼마만인가? 사느라 늙어가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함께하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롯이 친구와의 시간에 집중한 하루였다.


 헤어져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오늘 하루 너무 행복했다.'는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친구들과 이렇게 긴 시간을 함께 하는 일은 드물다. 각자의 가정에 충실하느라 만나면 늘 시간에 쫓겨 헤어지곤 했다.


 작정하고 만나니 이 또한 가능한 것을, 왜 그동안 그렇게 헤어졌는지 모르겠다. 특별히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오, 시간에 쫓기는 것도 아니오, 집에 쫓기듯 가야 하는 것도 아닌 하루.


친구와 12시간 서울에서 놀아보기!


오롯이 우리에게 준 힐링의 시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역시, 김치 없이는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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