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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Nov 09. 2018

15년 후, <소희가 집으로 돌아왔다>

꿈과 현실 중간 어딘가에서...

 소희는 15년 전 눈이 쏟아지던 겨울, 봉사활동을 다니던 양평의 보육원에서 만난 아이다. 아름반은 36개월까지의 어린아이들이 있는 곳이라 보건증을 제출해야만 출입 가능했다.


 봉사활동을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 부부는 아름반에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그날 아름반 봉사자분이 오지 않았고 아이들은 감기에 걸려 병원을 가야 했다. 보육원 차량에는 카시트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누군가는 아기들을 한 명씩 안고 타야 했다.     


 우리는 5세~7세가 있는 달님반 봉사를 다녔는데 그날은 아름반을 지원하게 되었다. 병원에 가야 할 아이들이 8명, 선생님 두 분과 봉사자였던 우리 부부, 보육원의 고학년 아이들까지 동원되고서야 병원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산속 깊은 곳에 있는 보육원에서 병원까지는 왕복 1시간 반이 걸렸다. 병원을 다녀오도록 아름반 봉사자분이 오지 않아 우리는 아름반에 남게 되었다.    

 

 보육원은 많은 분들의 후원으로 땅을 사고 여러 채의 빌라를 지었다. 아이들을 최대한 일반 가정집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데 아름반도 25평형의 빌라 가정집과 같은 구조였다. 보육원은 빌라마다 24시간 상주하는 선생님 두세 분이 계시고 사흘에 한 번씩 교대로 집을 다녀올 수 있었다. 그래서 보육원에 갈 때면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기분이 들었다. 다만 엄마 아빠가 아닌 엄마 두세 분과 아이들이 모여 사는 친구 집.         

         

 아름반에도 선생님 세 분과 태어난 지 12주 된 갓난아기 한 명, 36개월 이하의 아이들 십여 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서자 30개월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 둘이 눈에 띄었다. 찰랑거리는 긴 머리에 진한 쌍꺼풀과 뽀얀 피부를 가진 아라와 전통적인 한국형 눈에 까무잡잡한 피부, 들창코를 가진 단발머리 소희.   

  

 아라는 망설임 없이 뛰어와 내 무릎을 차지하고 앉았다. 소희는 아라와 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무릎을 언제 차지할 수 있을까, 아라가 언제 다른 곳으로 갈까 관찰하는 아이처럼 거실 한편에 우두커니 서서 우리를 바라봤다.      


 아라는 금세 무릎을 떠났다. 소희는 여전히 주변을 서성이기만 할 뿐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과 자동차 놀이를 하고 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내 어깨를 잡는 작은 손을 느꼈다. 소희였다. 무릎을 내어주자 살포시 앉는 소희. 꼭 안아 주었다.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눈, 코, 입, 귀까지 신기한 듯 만지더니 손을 잡고 이끌었다.     


 보육원 아이들은 가정에서 자라는 또래보다 언어 습득력이 느리다. 소희 역시 개월 수에 비해 말이 느렸는데 느린 말로 온 집을 돌아다니며 내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저건 뭐야?"  

 "이건 뭐야?"  

 "이건?"  

 "저기는 어떻게 가"      

                    

 소희는 질문이 많은 아이였다. 집안에 있는 물건 하나하나, 창밖에 보이는 풍경 하나하나까지 모든 것을 궁금해했다. 추운 날씨와 감기 때문에 집안에만 있어야 했던 그날, 소희는 한 시간이 넘도록 내 손을 놓지 않고 질문을 쏟아내다 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나는 그날 이후 소희가 눈에 밟혔다. 그 아이의 체온과 눈빛이 마치 내 몸과 하나가 된 듯 한 기분을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건증을 제출하고 아름반 봉사를 시작했다.    

 

 소희는 아빠가 있는 아이였다. 소희 아빠는 2개월 된 갓난아기를 출생 신고증과 함께 맡기며 금방 찾으러 오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30개월이 되도록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원장님은 꼭 찾으러 오겠다던 눈빛을 기억했고, 언젠가 반드시 데리러 올 거라고 확신하셨다.     

서류상 부모가 있는 아이들은 입양 대상에서 제외된다. 부모가 데리러 오지 않으면 보육원에서 살다가 열아홉에는 그곳을 떠나야 한다.      

 아름반에는 입양되어 떠나는 아이들이 많았다. 선생님도, 봉사자도 잘된 일이라 생각하지만 헤어짐이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날은 아라가 떠나는 날이었다. 아라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는 양부모는 일사천리로 서류를 준비해서 아이를 데려갔다. 소희는 그런 아라를 무심히 쳐다보더니 내 품에 뛰어와 안겼다. 품에 안겨있던 소희가 몸을 일으켜 내 눈을 한참 바라보더니 뒤돌아 뛰어가 친구들과 장난치며 놀았다.   

  

 우리 부부는 소희를 후원하기로 했다. 아빠가 데리러 오기 전까지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되기로 했다. 매주 아름반으로 봉사를 갔고 소희에게 각별히 신경 썼다. 소희가 커서 다른 반으로 옮길 때도 함께했다. 초등학생이 되어 주말, 방학 외출이 가능할 때에는 어김없이 집으로 데려왔다.


 소희는 외출을 나오면 도서관과 서점 가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늘 궁금한 것이 많았던 소희는 평소에도 책을 많이 읽었다. 다음 주에 만나면 모두 읽고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며 한 아름의 책을 안고 즐거운 표정으로 돌아갔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울 방학 외출하던 날이었다. 그날따라 보육원을 나서는 소희 표정이 좋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방에 들어가더니 나오지 않아 걱정하고 있는데 한참이 지나 서글픈 표정으로 방을 나왔다.     

       

 “엄마 아빠는 왜 나를 입양하지 않아요?”     

 원장님이 늘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대비하라던 상황과 마주했다.     

              

 소희에게 친아빠가 있다는 것과 엄마 아빠가 데려올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소희는 “아빠가 있구나” 하더니 이내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그럼 아빠는 왜 나를 데리러 오지 않을까요?”         

 

 아빠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못 오고 있지만 원장님 말씀대로 언젠가 꼭 데리러 올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그럼 친아빠를 만나면 엄마 아빠는 못 만나요?”     


 소희는 걱정되는 눈빛으로 물었다. 우리는 언제나 가족이고 아빠를 만나도 그것은 변함없다고 말해주니 안도하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그럼 나는 아빠가 둘이네요? 와!!! 좋다!!!”     


 소희는 그날 이후 두 번 다시 입양과 친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것을 더 이상 확인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소희를 만난 지 열다섯 해다. 그동안 친아빠는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고 열아홉에 보육원을 떠나야 하는 규칙에 따라 오늘, 소희는 짐을 쌌다.   


 그리고...


 우리 집으로 왔다. 오랜 시간 남의 집에 맡겨둔 아이가 돌아온 기분이다. 외출이 끝나고 소희를 돌려보낼 때면 늘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미안한 마음에 수많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제는 보내지 않아도 된다.   


 대학생활을 만끽하며 성인으로 살아가는 소희를 매일 볼 수 있고, 밤을 새우며 책 읽는 소희에게 잔소리를 할 수도 있다. 가장 행복한 일은 금요일 오후 보육원에 데려다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마음을 공유하며 한 번도 가족임을 의심한 적 없던 우리가 공간도 온전히 공유하기 시작한 오늘. 우리 가족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됐다. 사랑하는 딸 소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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