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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Dec 24. 2018

​적당한 거리가 오랜 관계 유지 비결

1년에 한 번, 연말이면 모이는 모임이 있다. 올해로 정확히 20년 된 인연으로 겨울이 오면 당연히 얼굴을 보는 것으로 알고 있는 멤버들. 올해는 바빠서 급하게 날짜를 잡았음에도 출석률 100%를 자랑했다. 심지어 40분이나 일찍 도착해 번화한 도심에서 장소를 잡고 세팅까지 해둔 K이사님 덕분에 앉으며 바로 잔을 들 수 있었다.


매년 만나서 하는 이야기는 비슷하다. 각자의 짧은 근황 토크가 끝나면 "너네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함께 일했던 3년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몇 시간의 시간여행을 하고 나서 "내년에 뵈요!"라는 인사와 함께 다시 현실 속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우리는 회사가 공중분해되면서 헤어진 옛 직장동료다. C이사님과 나는 7명이던 회사 초창기에 만나 100명이 되던 해에 헤어졌다. 회사가 잘못되면 많은 직원들이 C이사님을 따라가겠다고 나설 만큼 그는 훌륭한 리더십을 보유한 사람이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뿔뿔이 흩어졌고 본격적으로 모임을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이다.


소중한 인연이다. 우리는 직장동료였지만 친구였고 동지였다.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가 가장 많았고 간부들도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으니 젊은 기업이었다. 피 끓는 청춘들이 모여 주 7일은 기본이고 밤샘 근무도 많았다. 힘겨웠지만 되돌아보면 그때의 3년이 가장 행복했던 직장생활로 기억한다.


비록 3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서 더 애틋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5년, 7년, 10년을 함께 일했다면 지금처럼 끈끈한 정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사님들은 책상에 앉아 사인하는 간부가 되었을 테고, 우리는 머리가 커서 더 이상 서로를 '위로하는' 동료가 아닌 서로를 '경계하는' 동료가 되어있겠지. 그것이 지난 10년간 추억을 나누며 만나되 현실을 함께 하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유다.


이사님이었던 두 분은 현재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다. 나머지 멤버도 모두 여전히 IT 분야에 생존하고 있으니 다시 만나자면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매년 "이제는 우리가 다시 함께 일해야 할 때!"라고 외치지만 그 누구도 현실화하지 않는다.


거리 유지. 관계 유지.


우리가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함께 한 시간'은 무시할 수 없는 공감대를 만들어준다. 그 공감대가 소중할수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지켜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모두 알 나이가 되었다. 꼬꼬마 김피(내 애칭이다.)는 이제 밤샘을 한다고 "동생을 집으로 보내라!" 전화하는 언니와 함께 살지 않으며 오류를 잡아내지 못해 몇 날 며칠을 밤새다  서러움에 울며 불며 전화할 꼬꼬마 빡은 없으니 말이다.


C이사님 육순 잔치를 위한 계를 시작하자는 농담처럼 육순이든, 칠순이든, 또는 누군가 세상을 떠나든 우리는 매년 연말 모여 앉아 함께한 3년을, 각자의 시간을 나눌 수 있는 친구로 남아 있겠지?


소중한 인연일수록 적당한 거리를 두고 관계를 유지해야 롱런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1년 후 겨울에 만나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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