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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Dec 26. 2018

가지치기가 필요 없는 행복한 시간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캠페인에 참여했다. 주문한 실 3개가 몇 주 전 도착했다. 틈틈이 시간 날 때 뜨다 보니 2주에 두 개를 완성했다. 남은 하나는 주말까지 마무리해서 발송해야겠다 마음먹고 세 번째 모자를 뜨려다 콧수가 헷갈려 안내장을 펼치고는 깜짝 놀랐다. 완성된 모자 뜨개 코가 가이드보다 많이 잡힌 것이 아닌가. 2주의 시간은 아깝지만 완성된 모자를 풀어야 했다.      

          

지난 토요일. 잠이 오지 않아 새벽 3시에 일어나 뜨개를 시작했다. 1시간, 2시간, 3시간…. 조용한 새벽, 뜨개질에 속도가 났다. 기왕 시작했으니 계획대로 주말에 모두 끝내자 마음먹고 꼬박 7시간을 앉아 모자를 모두 완성했다.

<완성된 모자>

2주간 쉬엄쉬엄할 때와 달리 오롯이 앉아 정성을 들인 모자에 온기가 더해진 것 같아 뿌듯했다.

             

온 마음을 다해 되돌아올 것을 바라지 않는 마음이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마음. 주어도 아깝지 않은 마음.       

         

부모의 사랑이 대부분 그렇듯 마음을 온전히 내어놓을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시간과 돈이 들어도 아깝지 않고 실수한 시간이 억울하거나 화나지 않으며 기꺼이 다시 내어 줄 수 있는 마음 말이다.


Give&Take에 익숙한 삶을 살고 있다. 마음, 시간, 돈(밥, 선물 등을 사며 드는)을 주고 되돌아오지 않을 때 상처 받거나 적절한 대처를 하지 않는 상대를 미성숙한 인간이라 평한다.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주고받음을 저울질하며 몇 번의 기회가 동나면 베푸는 것을 멈추고 돌아선다. 나이가 들수록 너그러워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주기만 하는 관계는 사회적 인간관계에서 행하기란 쉽지 않다. 아니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일 테지.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가 좁아진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주기만 하는, 혹은 받고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기면서 인간관계는 가지치기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사과꽃이 무성하게 피면 크고 실한 것만 남겨두고 모두 때 버린다. 제대로 된 과일을 수확하기 위한 농부의 고된 노동이다.   

             

인간관계가 그렇다. 주고받던 마음이 기울어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쓸모없는 꽃으로 인식하고 때어 버린다. 피는 꽃은 많지만 남겨지는 꽃이 적은 이유가 그 때문이다.


때론 가지치기가 없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롯이 마음, 시간, 돈을 주고도 행복한 시간 말이다. 나는 그런 시간을 위해 뜨개를 했다. 예상치 못한 7시간으로 인해 어깨가 굳고 엉덩이가 아픈 후유증은 남겼지만 나에게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완성된 뜨개를 세탁하고 포장해서 우체국으로 걸어가면서 추운 겨울 따뜻한 군고구마처럼 달달한 맛을 느꼈다.


그것은 나만의 행복의 시간이며 가지치기가 필요 없는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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