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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Dec 28. 2018

어떻게 살 것인가?

엄마 집을 갈 때마다 동네 온천으로 향한다. 겨울에는 특히 빼지 않고 가는 코스인데 팔순이 넘은 엄마 몸을 씻길 때면 돌림노래처럼 "나도 할 수 있다."며 나를 밀쳐낸다. "나 어릴 때 엄마가 씻겨준 거 반도 못 해 드려. 빚 좀 갚읍시다!" 하며 엄마를 씻기고 나면 힘에 부칠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엄마가 어린 나를 씻기고 돌아서며 힘에 부쳐 "휴우~"하고 가뿐 숨을 내쉬던 모습이 생각난다. 엄마는 마흔이 되어 나를 낳았다.(비공식적인 나이로 계산하면 네 살을 더해야 한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었을 테니 또래보다 컸던 나를 씻기는 일이 힘겨웠으리라.


"나한테 맡겨준 항아리는 언제 가져가?"하고 묻기에 "15년만 보관하고 계셔. 단독주택으로 이사 가게 되면 가져갈게."라고 답했다. "야가 뭔 소리를 하노? 15년이면 내 나이가 몇인데!"


엄마는 언제부턴가 자꾸만 당신 물건을 나누려 한다. 항아리는 집이 좁아 내가 맡겨둔 것이 맞다. 그럼에도 당신이 떠나면 가져가지 않을까 염려된다며 자꾸만 묻는다. 몇 년 전 딱 봐도 할머니 이불을 내밀며 "한 번도 사용 안 한 건데 안 이뻐도 나 떠나면 이거 엄마가 준 건데 하면서 추억할 수 있잖아!" 하고 내밀기에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왔다.


팔순이 넘어 삶을 마무리하고 있는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 엄마의 지난 인생은 무엇으로 정의하고 있을까. 


어떻게 살 것인가?

지나온 삶은 차치하고라도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엄마 나이가 되었을 때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해 정신없이 돈을 벌고 모으는데 에너지를 쏟아야 하나?


올해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내일 당장 삶이 끝날지도 모르는 게 인생이다. 지금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데 ‘어떻게’에 대한 답을 아직도 명확하게 찾지 못한 듯하다. 내 나이쯤 되면 인생의 방향이 잡히고 원하는 삶을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삶이란 끝날 때까지 끝나는 게 아님을 느낀다.


남편과 몇 달에 한 번씩 세미나를 한다. 집안의 안건이나 자신의 변화 등에 대해 공유하는 자리다. 올해 마지막 세미나에서 내가 준비한 가장 큰 안건은 '죽음'이다. 만약 내가 먼저 떠나면 당신은 어떻게 살아달라는 부탁. 지나치듯 하는 말이 아닌 공식적인 세미나를 통해 전하고 싶었다. 남은 사람이 삶을 '어떻게' 사느냐는 중요한 문제니까 말이다.


아흔여덟 해를 살고 간 중국의 존경받는 학자 지셰린의 <인생>에서는 "인생에 대한 질문의 답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라고 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끊임없이 고뇌하는 것이 올바른 인생이라면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언젠가 엄마께 다시 젊어진다면 뭘 하고 싶냐 물으니 전문적인 일을 하는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지금도 여전히 지적 호기심이 넘쳐나는 엄마는 사회, 경제, 정치 뉴스를 허투루 보지 않는다. 우리를 만나면 시사 토론장을 만들곤 하는 엄마를 보면 인생은 여전히 '어떻게'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시대를 잘 타고났다면 어린 나를 씻기던 엄마 손이 커리어우먼이 되어 움직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그런 엄마()의 희생으로 현대를 잘 살고 있는 나는 팔순이 되어 젊어진다면 뭘 하고 싶냐는 질문에, 이 정도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


엄마와 온천을 다녀오며 인생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내게 지난 생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후회가 아닌 다행으로, 죽음을 준비하며 되돌아보는 생은 불행이 아닌 행복으로 기억되도록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살아야 그런 삶을 살 수 있는지 고민하고 성찰하며 살아낸다면 질문의 답을 찾고, 그것이 오답이어도 다시 찾아낼 수 있는 힘을 길러내지 않을까.


오답도 정답도 알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어느 겨울, 인생을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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