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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Dec 29. 2018

미끄러진 실수를 만날 때

정오가 마지노선이다. 카페인과 친밀도가 낮은 내 몸은 하루에 커피 한잔, 오전 시간만 온전히 허락한다. 며칠 전 오후 두 시가 넘어 카페인을 달라 몸부림치는 통에 카페로 향했다. 다른 생각에 빠져 “반샷만이요!”라는 주문을 놓치고 말았다. 오후에 마시는 커피는 샷을 줄여야 잠을 잘 수 있다.


이미 주문된 커피는 나왔고 나는 받아 들었다. 커피를 마시는 순간, 매끄럽게 밀려오는 커피맛에 무장해제되어 한잔을 모두 마셔버렸다. 그날 나는 긴긴밤을 보내야 했다.


알면서도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나는 그것을 ‘미끄러진 실수’라 불러본다. 규칙을 알지만 커피맛에 미끄러지고 마는 실수. 미끄러진 실수가 반드시 문제를 일으키느냐? 그렇지는 않다. 커피가 잠을 방해했지만 읽고 있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완독 했다.


실수에 연연하지 않기 위해 나는 미끄러진 실수’라는 말을 만들었다. 비단 커피 한잔이 아닌 업무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도전한 일에서도 실수한다. 실수로 인해 괴로운 시간이 있다. '좀 더 신중했어야 하는데', '좀 더 생각해 봤어야 하는데.' 하며 자신을 자책하는 시간 말이다. 자책으로 실수를 '실패'라고 정의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다독이는 방법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함께 커피를 마신 지인 역시 밤새 잠을 못 잔 모양이다. 새벽에 잠이 오지 않는다 투덜대며 자신을 질책하는 문자를 보내왔다. 규칙을 알면서도 지키지 못한 것을 실패로 정의하면 그것 하나 지키지 못한 자신을 비난하게 된다. 역으로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면 책으로 포만감을 얻을 수 있다.


'미련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뻔히 알면서도 저지르는, 혹은 '설마 그렇게 되겠어?' 했던 일의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시간이 무조건 필요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자책의 시간이 없다면 반성할 수 없고 반성이 없다면 똑같은 실수를 빠른 시간 내에 반복해서 저지를 테니 말이다. 자책과 반성의 시간은 짧고 스스로를 다잡는 시간에 에너지를 쏟으면 될 일이다.


지인에게 책이라도 읽으라 회신을 했지만 여전히 투덜대는 메시지가 건너와 더 이상 답을 하지 않았다.

 아직 실수를 한 개도 저지르지 않은 내일이 남아있다는 건 멋진 일이에요.


빨강머리 앤의 말처럼 새로운 내일은 실수가 없는 하루다. 오늘 저지른 실수는 오늘로 끝내고 실수 없는 내일을 즐겁게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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