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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Dec 20. 2018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익숙함을 넓혀가는 것'

십여 년 전, 갑자기 입술이 화장품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다. 뭘 발라도 가렵고 따가웠다. 오프라인 매장, 온라인 몰, 친환경 화장품 등 닥치는 대로 발라보아도 매번 같았다. 여러 병원을 다녀봤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한 입술은 건조해져 트다 못해 찢어지기까지 했다.


1년여를 찾아 헤매다 드디어 알레르기 없는 립밤을 발견했다. 단종될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베스트셀러가 된 립밤은 최근까지도 내 입술을 지켜주었다. 한데 올여름, 단종된다는 소식에 좌절했다.


다행히 많은 지출을 하지 않고 운좋게 새 립밤을 찾았다. 심지어 투명이었던 지난번과 달리 컬러가 있는 립밤이다. 며칠을 테스트도 할 겸 수시로 발라보았다.

알레르기 없음! 컬러 대만족!

합격이다.

< 출처 Pixabay >

컬러가 든 립밤을 바르고 만족스럽게 웃고 있는 거울 속 여인을 보자 그동안 대체재를 찾지 않은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단종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끌어안은 채 십여 년을 한 제품만 사용한 나를 보며 새로운 만남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새로운 만남'을 좋아하지 않는다. 새로운 물건을 만나면 그것에 익숙해져야 하는 시간이 두렵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서로를 알아가야 하는 과정이 지쳤다. 늘 새로운 만남을 주도하며 즐기고, 새로운 것을 탐닉하던 내가 변하자 지인은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익숙함에 젖어가는 것'이라며 받아들이라는 말을 건넸다.  


요즘 새 립밤을 만나 행복하다. 풀메이크업을 하고도 컬러가 없는 입술 때문에 줄곧 "어디 아프냐?", "기운 없어 보인다."는 말을 들어왔다. 요즘 화사한 입술로 집을 나서는 나를 보면 왠지 모르게 경쾌한 기분이 든다. 립밤 하나로 나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바뀌었다.


십여 년을 한 제품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호기심을 발휘했어야 했다. 늘 가던 식당이 아닌 새로운 식당에 도전해보고, 늘 입던 스타일이 아닌  새로운 스타일에 도전해보고, 늘 읽던 카테고리의 책이 아닌 전혀 본 적 없던 카테고리의 책을 꺼내보는 '호기심' 말이다.


익숙함은 편안함을 주고 편안함은 마찰을 줄여준다. 하지만 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면 불꽃이 튀지 않는다. 나는 아직 마찰을 통해 불꽃을 일으키고 싶다. 변화가 두려워 한 제품을 십여 년간 사용해온 나를 반성하며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익숙함에 젖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숙함을 넓혀가는 것'이라는 나만의 정의를 내려본다.


지금 당장, 호기심을 발휘해 새로운 만남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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