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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Dec 19. 2018

소유란 적당한 편리함

2018년 '비움' 실천을 되돌아보며...

감기로 땀범벅이 되어 며칠을 거실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잠을 잤다. 감기가 나아 다시 침대로 돌아갔을 때  따뜻했던 방바닥이 그리웠다. 옆집과 붙어있는 침대방이 따뜻할 거라는 기대와 달리 생각보다 따뜻하지 않아 더욱 그랬다.


결국 며칠 후 거실에 매트리스를 깔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바닥의 온기와 함께 외풍 없는 거실이 따뜻해 잠도 잘 오고 이불을 끌어당길 필요도 없었다. 그 후 계속 거실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침마다 이불을 정리해서 침대방에 들어가면 냉기가 돈다. 덩그러니 놓인 침대 위에는 둘이었다 하나로 분리된 남은 매트리스와 이불들이 쌓여있다. 창고나 다름없는 방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원룸 생활을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거실에서 밥을 먹고, TV를 보고, 책을 보고, 식탁에 앉아 컴퓨터도 한다. 밤이 되면 거실에서 잠도 잔다. 나는 그런 우리가 재미있어 "여보. 방은 세를 놔야겠어요!"라고 했더니 남편도 "월세를 얼마 받아야 하나" 하는 농을 쳤다.


우리에게 필요한 공간은 거실 하나였다. 물론, 옷방이 따로 있긴 하지만 살고 있는 공간은 겨우 몇 평 되지 않는 거실일 뿐이다. 5년 전 넓은 아파트를 떠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넓은 집에 살 때도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은 언제나 10여 평이었다. 나머지는? 청소하느라 힘들었고, 채워 넣느라 힘들었다.


SNS를 통해 2층의 넓은 단독 주택을 팔고 버스를 개조한 캠핑카에 살고 있는 6인 가족을 알게 됐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을 벤치마킹도 할 겸 자주 보는데 6인 가족도 필요한 공간은 그리 넓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이 넷의 방은 2층 침대 두 개가 붙어있고 거실 겸 주방은 접이식 테이블과 소파가 놓여있다. 거실은 주방이기도 하고 공부방이 되기도 한다. 캠핑카이기 때문에 언제든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지인을 만나 거실에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자 "여름에도 겨울에도 다들 그렇게 사는 집 많다."라고 했다. 여름에는 더워서 에어컨이 있는 거실에 나와 살고, 겨울에는 추워서 거실 바닥에 모여 잔다는 것이다. 지인이 사는 아파트는 우리 집보다 2.5배 넓은데 나머지 남은 공간의 활용도는 무엇인가? 결국 예전의 나처럼 청소하느라 힘들고 채워 넣느라 힘들다가 우리 집 침대방처럼 창고가 되고 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작은 평수를 소유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비움'을 실천하고 있는 나로서는 작은집에 살아도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을 뿐이다.


몇 년 전부터 비움을 실천하고 있고 올해 초 내가 결심한 것 중 가장 중요한 목표가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비우는 것이었다. 그중 집도 포함되어 작은 평수로 이사를 왔고 다음번 이사가 있다면 더 작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지금보다 더 비울 수 있다면 SNS의 캠핑카 가족처럼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고 있다.


올 한 해 동안 '비움'을 실천하며 '소유란 적당한 편리함'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적당한 편리함'이란 넓은 평수의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되며 많은 물건을 소유하지 않아도 되며 명품을 소유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거실에서 살면 매일 아침 이불을 정리해야 하고, 잠자기 전에 반드시 청소를 해야 하고 평소보다 환기도 잘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온기를 준다. 불편함이 섞인 적당한 편리함이다.


'비움'을 실천하며 물욕을 버리려 노력했던 한 해다. 새로운 해를 기다리는 지금, 내년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비움을 실천해서 거실 생활의 적당한 편리함과 같은 삶에 좀더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샘은 자꾸 비워야 맑고 깨끗한 물이 샘솟는다. 만약 비우지 않고 가득 채우고 있으면 그 샘은 썩어갈 것이고 결국에는 더 이상 샘솟지 않게 될것이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자꾸 비워야 영혼이 맑아진다. 비우고 또 비워 무위의 경지에 이르면 진정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 저 푸른 하늘을 유유히 비상하게 될 것이다.
- 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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