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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Nov 03. 2018

내적 갈등 없는 무소유의 삶?

 한동안 단화, 운동화와 지내다 ‘출근’하면서 구두를 만난다. 몇 달 동안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던 발이 가죽의 조임에 옹기종기 모여 긴장된 하루를 보낸다.

 불편하다.

 누군가의 강요는 없다. 구두를 선택한 것은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되었다는 나만의 의식이랄까? 번화한 거리와의 어울림이랄까? '직장인'이라면, '명동거리를 걷는 여자'라면 왠지 구두여야 할 것 같은 의무감마저 든다.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일이 쉽지 않다. 불편한 발의 피로가 다리를 통해 온몸으로 퍼져온다. 퇴근 후 녹초가 되는 여러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구두. 그런데도 구두를 신고 싶은 나는 여전히 ‘여자’인가 보다.


 출근한 지 일주일 되던 새벽, 자다 말고 일어나 신발장을 열어본다. 단화나 운동화 말고 구두 없나? 그 많던 구두는 새로운 주인을 찾아 떠나고 없다. ‘소유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고 일 년 이상 신발장에 숨어 지내던 구두를 처분한 지 오래다. 갈등한다. 

 '구두 하나 살까?'

 며칠을 고민하며 매장을 드나든다. 신어보고 벗고, 신어보고 벗고, 굽이 높다, 낮다, 가죽이 얇다, 뒤가 벗겨진다 등등의 이유를 들며 구두 하나 사는 것을 주저한다.


  1:1의 법칙


  하나를 버려야 하나를 살 수 있는 삶의 기준을 지키려면 가진 신발을 하나 버려야 하는데 버릴 신발이 없다. 한동안 신지 않는 구두는 모두 버렸고 멀쩡한 신발을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주일 내내 매장을 드나들면서도 빈손이다.

 '하나 사고 싶은데... '

 나는 여전히 물욕을 버리지 못했나 보다. 빈손이던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를 넘기지 못한 채 구두가 들린 손으로 매장을 나온다.  하지만 즐거운 마음보다는 스스로 지키지 못한 삶의 기준이 부끄러워 이틀이 지나도록 포장조차 뜯지 못한다. 사흘이 되던 날, 새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서다 뒤가 맞지 않다는 이유로 다시 포장한다.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인연이 짧아~"

 매장에 돌려준다. 후련함도 잠시, 원래 내 것을 빼앗긴 기분에 나도 모르게 심술이 고약해진다.

 "매장 구두가 영 맘에 안 드네~"

 

 일주일 후 새벽, 자다 말고 일어나 다시 신발장을 열어본다. 움직임이 잦아들면 불이 꺼지는 신발장 앞에서 몸을 흔들며 불빛을 살려 낸다. 기어코 오늘은 버릴 신발을 찾아내리라 마음먹는다. 한참을 뒤져 버릴 만한 신발을 찾고서는 “심봤다!”를 외친다.


 그날 오후, 당당하게 매장을 찾아 플랫슈즈부터, 웨지힐, 하이힐에 부츠까지 신어 본다.


 “이 신발은 굽이 적당해서 좋아” , “이 신발은 컬러가 마음에 들어.” , “이 신발은 디자인이 예술!” 이라며 매장에 있는 구두를 모두 살 기세다.  그리고 당당하게 말한다.


 “이 구두  주세요!!”


 구두 하나 사는 일이 세상 구하는 일보다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 삶. 스스로의 가치를 지키며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는 여전히 물욕에 젖어있고 그것을 털어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내적 갈등 없는 무소유의 삶을 살 수 있을까? 내게 이번 생에 그런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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