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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Oct 27. 2018

내 삶의 패턴을 사랑해.

 안녕? 참 오랜 시간이 지났지?     

 

 너를 처음 만난 건 어느 날 갑자기였어. 아무렇지 않다고, 나는 모두 괜찮다고 마음을 다잡고 있을 무렵, 너는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어. 그런 너와는 며칠만 함께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어. 너를 좋아하지 않았거든. 아니, 미안하지만 너는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거라고 '나는' 확신해.      


 한데 며칠이 지나도 몇 주가 지나도 너는 떠나지 않더라. 나는 점점 지쳐갔어. 너를 떠나보내기 위해 고군분투했지. 그러다 결국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어. 하지만 전문가의 도움이 그렇게 소용없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 전문가도 자신이 도울 방법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다시 한번 너 스스로 참 끈질긴 존재라는 것을 증명했어. 결국 네가 떠나지 않는다는 말에 시골에서 자유롭게 사셔야 했을 엄마가 이 복잡한 도시에서 몇 달을 함께 살아줬어.      


 그러다 우연히 지인의 추천으로 또 다른 전문가를 만났어. 몇 달을 너와 함께하고 있는 내게 그분은 태평한 목소리로 말했어.      

 “굳이 보내려고 노력하지 말고
내버려 두세요.
언젠가 떠나는 날이 옵니다.”      


 그분의 표정과 말투가 내 마음을 다독여줬나 봐. 태평했지만 단호한 말투! 그 후 그분과 수시로 만났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주일에 네다섯 번은 만났던 것 같아. 정말 신기했어. 너는 그 시간만은 나를 떠났고 나는 평온하게 쉴 수 있었지. 때로는 한 시간이 넘어도 가지 않는 나를 그분은 야속하게 내몰지 않았어.      


 그렇게 1년을 보냈어.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온전히 너와 분리될 수 있어서 다행히 그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분이 조언한 데로 나머지 23시간은 너를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지냈어. 남들보다 시간이 많았으니 그때 참 많은 것들을 시도해 봤지. 집중력이 떨어져 잘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어.    

  

 그러던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너는 떠났어. 정말 떠난 걸까 의심했어. 너와 며칠만 함께 하면 될 것 같았던 처음과 달리 1년을 함께 보내고 나니 며칠 후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지.


 하지만 너는 며칠이 지나도 몇 주가 지나도 오지 않았어. 나에게 오던 처음처럼 홀연히 그렇게 떠난 거야. 점점 너의 부재를 인정하게 되면서 지난 1년을 보상이라도 받듯 자기 시작했지.   

   

 저녁 약속은 '밥만' 먹는다는 조건으로 친구를 만났고 회식은 '1차만' 한다는 조건으로 참석하곤 했어.


 그때 나는 저녁 9시면 머리가 뒤로 젖혀질 만큼 졸렸거든. 한동안 또다시 네가 올까 두려워 졸릴 때 실컷 자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살았어. 주변 사람들은 초등학생도 아닌데 왜 저녁 9시부터 잠을 자느냐 말했지만 난 어쩔 수 없었어. 너무 졸렸고 피곤했고 힘겨웠어.    

  

 그렇게 1년이 지나서야 너와 헤어진 것을 인정하게 됐지. 잠드는 시간도 10시로 미뤄졌어. 다행히 나와 같은 시간에 잠드는 남편을 만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삶의 패턴을 바꾸지 않아도 됐어. 참 감사한 일이야.  


 벌써 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네. 그런데도 여전히 너를 다시 만날까 두려운 마음이 내 안에 있을 만큼 너는 강력한 존재야. 한참 밝고 활발했던 나를 주저앉혀 버렸던 너. 두 번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을 만큼 인생 최악의 만남이었지.      


 너와 헤어지고 나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어. 아무렇지 않게 보내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생겼어. 머리만 닿으면 잠드는 누군가가 세상에서 가장 부러웠는데 지금은 내가 그렇게 살고 있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지. 일찍 자야하니까 될 수 있으면 야근을 하지 않아. 내게 저녁 시간은 남들보다 엄청 짧거든. 퇴근하고 운동하고 씻으면 자야 할 시간이야. 운동을 놓칠 수 없으니 결국 이른 퇴근을 해야만 해. 저녁도 과하게 먹지 않아. 일찍 잠드는 나는 과한 저녁 식사를 하면 속이 더부룩하거든. 다이어트 효과도 있고 얼마나 좋아?      


 나는 너와 헤어진 후의 내 삶을 사랑해. 물론 불편함이 없다고 할 수는 없어. 나도 사회생활을 하니 밤 9시에 벌떡 일어나 "저 잠자러 가야 하거든요!!!"하고 소리칠 수 없는 날도 있어. 모임을 할 때도 마찬가지야. 어느 날 친구가 하소연하며 나를 놓아주지 않았어. 그러다 밤 10시가 넘어 내 동공이 흐트러지는 것을 보고 택시 태워 보내준 날도 있지. 남편이 회식하던 날 의자에 앉아 기다리다 머리가 뒤로 넘어가 벽에 부딪힌 적도 있어.  

   

 불편해. 불편하지만 나는 내 삶의 패턴을 너무너무 사랑해. 그리고 그만큼 소중해.     


 그래서 하는 말인데, 두 번 다시 우리가 만나는 일은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너에게 이 글을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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