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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Nov 16. 2018

너는 스무살 청춘을 찾아서 왔구나.

 정확히 9년 만에 대학 친구를 만났다. 우리의 지난 만남이 9년 전, 2009년 10월 22일이었다는 것은 친구의 싸이월드가 증명해줬다. '싸이월드'라는 말을 들으니 시간의 흐름을 실감했다.

 심리적 시간은 9일인데 9년이라니...

 9년 전 만남을 뒤로하고 친구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2~3년에 한 번씩 한국에 들어왔지만 아이가 어리다는 핑계,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못했다. 이번에는 결심이라도 한 듯 세 달 전 '이번에는 꼭 너를 봐야겠어!'라며 연락이 왔다. 달력에 동그라미를 해두고, 휴대폰에 알람까지 설정해두며 친구를 기다렸다.


 대학 친구이긴 하지만 우리는 겨우 한 학기를 같이 다녔다. 1학년 2학기 개강하던 날 '복학생'이라며 들어온 친구는 같은 나이였지만 선배였다. 나는 학교 생활에 방황하던 차였고 친구는 복학 후 적응이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불완전했던 둘은 친구가 됐고 단짝이 되었다.


 찰떡같이 붙어 다니며 깔깔깔 웃음을 뱉어 냈다. 지하철을 타고 종점에서 종점을 오가며 수다를 떨었다. 학교 땡땡이를 치던 날에는 서울대공원을, 명동을, 남대문을, 종로를, 대학로를 돌아다녔다. 청춘을 이야기하고 (보통 남자 친구 이야기였지 않았을까? 훗~) 청춘을 즐겼다. 친구는 내게 낯선 서울 생활과 대학 생활의 활력이었고 즐거움이었다.


 강렬하게 함께 했던 한 학기가 끝났다. 개강날이 두려웠던 지난 학기와는 달리 겨울방학이 끝나고 학교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개강날 학교 앞 지하철역에서 만나기로 했던 친구가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삐삐 호출 번호 8282를 얼마나 눌렀는지... 첫날은 일이 있겠지, 둘째 날은 무슨 일이 있나? 셋째 날에는 화가 났고 넷째 날에는 친구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학교 가는 길 전화부스에 들어가 삐삐에 수많은 녹음을 남겼다. 학교 안 다닐 거야?” 질문으로 시작했다가 야!!! 너 이번에도 학교 안 나오면 재적이야!!! 소리 지르다가 살아는 있냐??? 걱정하던 몇 주가 지나 결국 친구 기다리는 것을 포기했다.


 여름 방학이 지나고 가을이 시작될 즈음 불쑥 내일 뭐하냐?하며 아무렇지 않게 물어오는 친구의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아이러니한 아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학교로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다시 만나 웃고 울며 청춘을 보냈다.

 

 몇 년 후 다시 연락두절. 1년 정도 부산에서 살았었어~ 하며 돌아오고 다시 어느 날 캐나다 이모한테 가~하며 떠났다가 "이제 한국에서 살려고~"하며 돌아왔다. 어느 날에는 “아직 전화번호 그대로네하며 불쑥 전화가 오기도 했다.


 친구는 이렇게 떠났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어쩌면 9년이라는 긴 헤어짐이 새삼스럽지 않았던 것은 이미 반복된 훈련 때문은 아닐까 싶다. 되돌아 생각해 보면 난 늘 그 자리에서 친구를 기다렸다. 연락처가 바뀌면 친구 엄마께 전화를 해뒀다. 오래도록 연락 없는 친구를 기다리다 친구 엄마와 통화를 하고, 딸을 기다리던 엄마도 내게 전화를 해왔다. 그리고 우리는 늘 아무렇지 않게 돌아오는 그 아이를 맞이했다.


 이번에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던 마음이 친구 얼굴을 보자 왈칵 무너져 눈물이 났다. '그리움'이 온몸을 휘감아 버린 기분이었다.


 친구는 대학시절처럼 말라있었다. 가녀린 손가락을 자랑하던 친구의 손마디가 굵어진 것을 보니 사느라 바빴구나, 힘겨웠구나 하는 마음에 짠했다. 손을 잡아 보는 내게 “힘은 들었지만 서글프지는 않았어. 정말 열심히 살았어.”라는 말을 내뱉고 있는 친구의 모습에서 또 다른 이름, '엄마'가 보였다.

머리를 쓸어 넘기는 버릇, 이야기를 시작할 때 눈을 감을 듯 시선을 내리는 습관, 미간을 찡그리는 표정, 웃을 때 보이는 치아, 어린아이 같던 젓가락질, 걸을 때 한없이 유유자적해 보이는 뒷모습...  

 연락 두절되었다 돌아올 때의 친구는 매번 다른 모습이었다. 한데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스무살 대학생 때 만났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친구의 눈빛, 손짓, 웃음 하나하나가 그랬다. '역시 아이러니한 아이구나' 세월을 거슬러 스무살의 모습으로 돌아오다니...

 

 어느 날 불쑥 “나 한국에서 살 거야!”하고 말해도 전혀 놀라지 않을 친구. 강렬한 한 학기를 함께 보낸 내 대학시절 절친이자 애증의 친구. 친구를 생각하면 지하철 역 전화부스 안에서 울부짖으며 기다린다는 녹음을 하던 내가 보인다. 그리고 '너는 여전히 잘 살고 있지?' 하며 눈썹을 치켜세우는 친구의 모습이 떠오른다.


 다음 주에 만나자!”는 인사를 하고 헤어지니 늘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았던 친구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음이 낯설다. 너무 좋아서 미국 돌아가는 것을 미루겠다는 메시지를 받고 '역시 너는 스무살 청춘을 찾아서 돌아왔구나'싶어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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