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야 알지
초콜릿 과자 광고가 예전에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 하며 끝났는데 요즘은 “이젠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하며 “정 때문에 못한 말 까놓고 말하자.”한다. 정이 있어도 말은 해야 안다는 것을 정확히 이야기해 주는 광고다.
연애할 때 남자는 곤란한 경우가 생긴다. 보통 여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말하지 않는다. 연인이 독심술이라도 부리기를 기대한다. ‘알아서 해 줘 야지. 내 마음을 그렇게 몰라?’ 속으로 말한다. 뭘 가지고 싶냐, 어디를 가고 싶냐 묻는 남자 친구에게 “알아서 해.”라고 말한다. 그러다 원하는 선물이 없거나, 원하는 데이트 장소가 아닐 경우 독심술을 발휘하지 못한 남자 친구는 ‘천하의 눈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렇게 말을 해줬는데 모를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며 남자 친구를 몰아붙인다.
“회사 과장님이 어제 이쁜 지갑을 하나 새로 샀더라고.”
‘...’
“친구가 남자 친구랑 주말에 스테이크 먹으러 다녀왔대.”
‘...’
남자는 절대 알아듣지 못하는 여자들의 대화법이다. 아무리 만족시키라는 표정으로 쳐다봐도 남자는 말하지 않으면 끝까지 모른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생각한다. 늘 함께 하고 있고 서로를 잘 아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냐고 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도 사람은 모두 다르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과 시각도 다르고 보고 느끼는 감정도 다르다.
“팀장님이 기획서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네. 수정해 와.”
‘무엇을? 어떻게? 언제까지?’
“우리가 같은 팀으로 지낸 지가 벌써 5년이야 5년! 꼭 말해줘야 아나?”
이어폰에 음악을 크게 틀고 입 모양을 보며 무슨 말인지 다음 사람에게 전달하는 게임 같다.
굳이 말해줘야 하냐 묻지 말고 ‘굳이 말해줘야’ 이해할 수 있다. 은연중에 암시하거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에둘러 이야기하는 것을 상대가 이해할 수 없다. 5년을 함께 한 시간과 원하는 수정안은 별개의 문제다. 50년을 함께 산 부부도 ‘도대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말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말로 해야 안다.
크리스텔 프티콜랭 (Christel Petitcollin), 『나는 왜 네가 힘들까』에서
“표현하지 않은 요구는 만족시킬 필요가 없다. 내 원하는 바를 분명히 말한 적 없다면 상대가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고 원망해선 안 된다. 역으로 상대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는데 내 쪽에서 알아서 헤어릴 필요도 없다. 이것이 소통의 황금률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딱딱한 식감을 좋아한다.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것을 좋아해서 생 야채, 된밥을 좋아한다. 남편은 뭐든 잘 먹고 내가 고른 음식에 별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딱딱한 식감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6개월쯤 지나고 나서였다. 나는 라면을 잘 먹지 않아 늘 남편 혼자 먹곤 했는데 한 번은 먹겠다고 나섰다. 라면을 끓이다 말고 덜어 주더니 자기 몫은 계속 끓이는 게 아닌가? 퍼져서 맛없지 않냐 물었더니 자기는 퍼진 라면을 좋아한다고 했다. 음식도 실은 부드러운 식감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퍼진 라면, 익은 야채. 진밥.
말하지 않아서 전혀 몰랐다.
딱딱한 식감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남편이 한 밥은 언제나 진밥이었는데 물 조절에 실패했다고만 생각했다. 이제는 된밥도 진밥도 아닌 중간 즘 되는 밥을 먹는다. 내가 좋아하는 오이 무침과 남편이 좋아하는 가지나물 반찬을 먹으며 서로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