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Gérard Barthes)의 말이다.
“질투심을 느낄 때, 나는 네 번 괴로워한다. 우선 질투하는 것 자체가 괴롭고, 질투하는 나 자신을 책망하는 것이 괴롭고, 내 질투심이 상대에게 상처를 줄까 봐 두려워 괴롭고, 내가 그런 시시한 감정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괴롭다.”
질투란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두려움, 불안이라는 부정적인 사고와 감정에 연결된 감정이다. 엄마가 자신이 아닌 다른 아기를 안고 있으면 울며불며 안기는 어린아이의 울음은 질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헤어진 남자 친구가 새로운 연인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질투가 난다. 질투가 난다는 것은 헤어져도 여전히 자신의 연인이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또한 그 이면에는 헤어진 남자 친구는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는데 자신은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깔려있다. 이런 질투는 새로운 남자 친구가 생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없어진다. 혼자일 때는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질투한다. 새로운 연애를 통해 자신감이 생기면 지나간 사람에게는 무관심 해진다.
동화 백설공주에서 왕비는 거울에게 물어본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이쁘니?” 자신보다 이쁜 백설공주의 존재를 알고 자신의 가치가 사라질까 두려워한다. 이런 사람은 더 나은 사람이 있다는 자체를 고통으로 받아들인다.
지금 느끼는 질투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질투 자체는 괴롭지만 스스로를 책망하는 상황까지 가지 않으면 된다. 이쁜 백설공주를 보고 질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백설공주의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왕비만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면 된다. 헤어진 연인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것은 배 아프지만 자신도 새로운 사랑을 위해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질투는 보통 나이, 환경 등이 비슷한 사람에게 느낀다. TV에 나오는 중동 부호나 지난 세기 살았던 양귀비를 질투하지 않는다. 같이 일하는 직장동료, 친구, 아파트 주부 모임 등 자주 만나는 사람을 보고 느끼는 감정이다.
친구의 외모가 뛰어나거나 부자라고 질투한다 해도 당장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외모가 이쁜 친구를 질투한다고 타고난 얼굴을 바꿀 수 없다. 성형을 통해 따라가려면 시간과 돈이 들고 부작용도 생각해야 한다. 부자인 친구를 질투한다고 갑자기 금수저가 될 수 없다. 매월 들어오는 월급은 최소한 1년 동안은 동결이다.
질투로 자신의 인생을 탓하거나 자책하는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자신은 자신만의 삶이 있다. 원하는 모든 것을 소유할 수는 없다. 질투가 강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은 보지 못하고 남이 가진 것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 이쁜 외모를 물려받지 못했다고 자신의 모든 신체가 아름답지 않다고 할 수 없다. 자신만의 매력이 있고 그것에 감사하면 된다. 친구처럼 돈이 많지 않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다. 자신만의 저축 습관을 가지며 살면 된다.
영화 <블랙스완(Black Swan)>에서 주인공 니나는 새로 입단한 릴리에게 흑조 역할을 뺏길 위기에 처한다. 니나는 질투심에 불타 릴리를 상상 속으로 죽이고 현실과 혼돈한다. 현실에서 끝없는 욕망으로 자기학대를 일삼는다.
이 영화는 니나를 통해 진정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은 릴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질투라는 내면의 감정과 맞서서 가질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하지 않아야 한다. 니나의 자기학대는 질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주인공 니나 역시 아름다운 발레리나임에도 자신이 가진 장점을 찾아 존중할 줄 몰랐다. 건강하게 자신을 유지하는 비결은 다른 사람을 질투하더라도 스스로를 책망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자세다.
자기 존중감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질투하지 않는다. 질투하더라도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를 가꿔 나간다. 다른 사람에 비해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서 가치를 찾는다. 가치의 기준을 자신에게 두고 살면 질투의 감정에서 멀어질 수 있다. 질투라는 연약한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 있다. 질투를 하지 않으면 가치 있는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