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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Jan 06. 2019

비울 수 없는 즐거움

지난주 언니 부탁으로 노트북을 샀다.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지 않아 세팅하고 주말에 인수인계를 하며 내 노트북 바꿀 때가 지난 것을 알았다.


직업의 특성상(이라고 포장하고 싶다.) 노트북에 민감해 자주 바꾼다. 연말이 되면 다음 해에 나올 노트북 사양을 살피느라 바쁘다. IT기기란 연식이 중요한 법이라 해가 넘어가면 가격이 다운된다. 차량을 중고로 판매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때문에 AS기간이 남아있는 1년 내 중고로 팔아야 좀 더 높은 금액을 받을 수 있다. 10개월 만인 지난 11월에 팔았어야 했는데 정신을 놓고 지내다 시기를 놓쳤다.


주변에서는 귀찮지 않으냐 묻지만 트렌드를 알아야 진정한 IT인이라는 억지를 부리며 꾸준히 취미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몇 년 동안 이해하지 못하던 남편도 이제는 포기했는지 새 노트북이 올 때마다 어차피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을 알기에 정을 주지 않겠다는 듯 무심한 눈길을 보낸다.


새로운 물건을 만날 때 묘한 떨림이 있다. 좋아하는 물건의 경우에는 전율마저 느낀다.


물욕을 버리며 비우는 삶을 살자 마음먹은 지 3년이 넘었다. 틈만 나면 집안을 뒤져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찾아 떠나 보낸다. 어제도 비싸게 주고 산 것이 아까워 내려놓지 못했던 보드복을 재활용함에 넣고 돌아왔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무한도전>을 읽고 보드를 다시 타볼까 생각했지만 실천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내려놓았다. (마흔이 넘어 보드에 도전한 작가의 에세이와 소설을 엮어 놓은 책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책을 3천 권 가까이 소장하고 있었다. 안방을 책방으로 내어 줄 만큼 소중한 물건이라 내려놓기까지 꽤 많은 고심을 했다. 정리해야겠다 다짐한 가장 큰 이유는 나만 읽고 쌓아둔 것이 아까워서였다. 책방을 하고 싶어 깨끗한 상태로 보관해야 했던 책을 누구에게도 빌려주지 않았다. 3년 전 중고 서점 사장님이 콧노래를 부르며 트럭에 실어 가는 모습을 보니 내어주길 잘했다 싶었다. 그에게는 사업이었고 나에게는 공유의 순간이었다. 그 후, 읽은 책은 중고 서점에 팔거나 주변에 나눈다. 최근에는 이북으로 읽거나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어 책장이 필요 없을 정도다.


그만큼 비우는 삶에 익숙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노트북에 대한 집착은 내려놓지 못했다. 책만큼이나 좋아하는 신상 노트북 사용해보기는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비움과 떨림의 경쟁에서 떨림의 승리인 셈이다.


비움을 실천하고자 마음먹은 삶에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즐거움은 존재하는 법. 신상 노트북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요즘, 바꿀 타이밍을 보고 있다.


언젠가 비움 목록에 노트북은 최소 1년 이상 사용하기 같은 규칙이 들어오는 날이 오겠지? (올까?)


내게 신상 노트북은 비울 수 없는 즐거움이다. 아직은 비움 목록에 넣을 수 없음을 절감하며 뒤적인다.

이번에는 어느 브랜드로 갈아탈까?


@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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