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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Jan 07. 2019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최선을 다하는 자세

<프리랜서들에게 고함>

학창 시절 사용했던 책상 서랍에서 6학년 1반 김희정 어린이의 숙제장을 발견했다.

<숙제장>

머릿속을 아무리 뒤져 보아도 이 시간에 대한 기억은 찾을 수 없지만 글씨체를 보니 나의 흔적이 맞다.


숙제장은 정성을 들여 최선을 다한 모습이 역력하다. 도형은 흐트러짐이 없고, 정자체의 글씨는 대회라도 나가는 듯 곧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부모님이 공부해라 애달아하던 분들도 아니었고 시골 초등학교에서 경쟁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일도 없었으니 어린이 김희정은 자기 자리에 꽤 충실했나 보다.


새삼, 어른인 김희정은 어린이 김희정만큼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지 자문(自問) 해 본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최선을 다하는 자세.  


나는 프리랜서다. 길면 1년, 짧으면 몇 달의 계약으로 일을 한다. 정규직에 비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횟수가 많고 짧은 인연이 대부분이다. 많으면 백여 명이 넘는 인원이 프로젝트를 위해 만났다 흩어진다. 사람마다 계약기간이 다르니 피아노 건반 오가듯 드나들기를 반복한다.


내가 처음 프리랜서를 시작한 십여 년 전만 해도 프로젝트에 파견을 나가면 정규직 비율이 높았다. 안정적이지 않은 프리랜서는 계약이 끝날 때에 맞춰 다음일을 찾아야 하는 수고로움과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 스트레스가 있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만큼의 불안전한 요소를 감안해서 정규직보다 급여가 높은 편이다. (대신 4대 보험 포함 기타 보호장치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당연한 변화였는지 모르겠다. 정규직보다 눈에 보이는 돈의 부피를 따라 너나 할것 없이 프리랜서를 선언하면서 시장은 포화상태가 된 지 오래다. 경력이 쌓인 나는 팀원보다는 리더로 일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일의 승패를 가름하는 프리랜서가 정규직보다 훨씬 중요해진 요즘, 실력 없는 프리랜서를 만나게 될까 두려울 때가 있다.


예전 이력서의 경력은 업무 능력과 매칭 되었지만 요즘은 이름과 연락처 확인용도 외 신뢰할 것이 없다. 경력을 쌓은 회사, 팀원들을 통해 평판조회, 레퍼런스 체크가 더 믿을만 하다.


프리랜서란 정규직에 비해 자유로운 직업이다. 자유롭다는 것은 자신이 일을 선택할 수 있고 쉬고 싶을 때 일하지 않을 자유로움을 말한다. 일을 할 때까지 자유롭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신이 맡은 자리에 대한 책임감과 능력은 장착해야 한다. 상황과 무관하게 늘 자유로운 프리랜서들이 시장의 퀄리티를 하향 평준화시키고 있다.


어느 날 연락두절, 흘러간 시간과 무관하게 진척률은 빨간불, 어느 날 갑자기 계약 해지 통보를 해 온다. 그럼에도 회사는 급여를 챙겨줘야 법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이용해 악착같이 급여를 챙겨간다.


상황이 달라지면 사람은 변해야 한다. 자신에게 이로운 점에만(급여) 초점을 두지 말고 상황에 맞는 능력과 자세를 장착해야 한다. 실력은 부족한데 급여란에 숫자만 높여 이력서를 내미는 사람을 자주 만난다.


프리랜서란 단순히 몇 달 일하고 떠나는 자유로운 영혼이 아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1인 기업이다. 기업 대 기업의 계약에서 연락 두절되는 (똥) 매너는 개나 줘버려야 하지 않을까.


나 역시 민폐 캐릭터가 되지 않기 위해, 모든 일상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되지 않기 위해 애 쓴다. 6학년 1반 김희정 어린이의 성실함이 내 안에 남아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자아성찰로 하루를 시작한다.


@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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