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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Mar 06. 2019

너만 힘든 것은 아니야. 오늘도 고생했어

퇴근길 반가운 양말을 발견했다.


출근길에 만났던 직장인으로 짐작되는 여인이다. 나와 같은 방향으로 향하던 양말과 신발이 이뻐 유심히 봤는데 퇴근길 내 앞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서있다. 인사를 할 사이는 아니지만 그녀도 오늘 하루를 잘 보내고 안전하게 집으로 향하고 있구나 싶어 같은 칸에 올라탔다.

출퇴근 시간이 같은 직장인(짐작)

오늘, 사람 때문에 마음 상한다며 퇴근 후 술잔을 기울여야겠다는 동료와 헤어져 나 역시, 상한 마음을 운동으로 달래기 위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역시 사람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가 시작된다.


일이 재미있어서, 비전이 있어서라는 이유가 없어질 만큼 경력이 많은 우리는 미세먼지에 가격고민 없이 공기청정기를 사기 위해 회사를 다닌다. 씁쓸하지만 현실이다.


프리랜서인 내가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계급은 갑을병정으로 치자면 이다. 심지어 무기경신으로 내려가기도 한다. 이번 팀은 정과 무, 기의 조합이다. 병도 안 되는 우리는 찌그러져 있어야 한다는 농담이 오갔다. 프리랜서의 삶이란 자유로운만큼 감정의 요동 또한 자유롭다.


갑님 사무실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오늘 하루도 잘 버텼다. 내 자리가 아닌 듯한 자리에서, 의사결정은 단 하나도 할 수 없는 위치에서, 앞뒤 질서 없이 날아오는 업무를 받아내면서, 참 잘 버텼구나.


퇴근길, 아침에 본 이쁜 양말을 신은 직장인을 보고 혼자서 위로받는다. 저 여인도 이쁜 양말과 신발을 신고 하루 종일 직장에서 일하느라 고생했겠구나. 괜스레 동질감을 느낀다. 8시간의 노동을 끝내고 안전히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우리가 대견스러워진다.


내일도 공기청정기 필터를 사려면 이쁜 양말을 신고 그녀도 출근을 하겠지. 세상에는 또 다른 양말을 신고 출근하는 수많은 그녀들이 있겠지. 나를 위한 위로의 말을 건네본다.


“너만 힘든 것은 아니야. 오늘도 고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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