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도호쿠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주인공 요조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행동을 포장한다. 가족의 행복도, 자신의 행복도, 주변인과의 관계를 위한 일이 아니었다. 불안전한 자기 자신을 덮기 위함이며 비합리적인 행동들에 대한 자기 합리화였다. 작가 디자이 오사무는 <인간실격>이라는 소설 속 요조를 통해 삶에 대한 자신의 고뇌를 쏟아낸 듯하다. 여러 차례 자살 시도를 하다 끝내 삶을 다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작가가 인간에 대한 분노를, 그 속에서 살아내지 못한 자신의 사유를 토해낸 것이 아닐까.
요조는 어린 시절부터 순수한 인간관계가 가능하지 않다고 단정 짓는다. 가족들이 모이는 식사가 형식적일 뿐 제대로 된 가정의 행복한 모습이 아니라 느낀다. 도쿄에 사는 아버지가 시골집에 내려올 때마다 사 오는 선물이 자식을 사랑하는 진정한 마음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또한 앞에서 웃지만 돌아서며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는 집안사람들까지, 그의 머릿속에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싹트게 한 요인들이다. 그런 이유들로 요조는 자신을 포장한다. 감추고 닫아 버린다.
사실 책을 읽는 내내 요조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가 쉬이 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쓰레기 더미 속으로 걸어 들어가 자신은 그곳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임을 자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포장된 행동과 인간에 대한 삐뚤어진 시각을 가지게 될 만큼의 큰 사건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찾을 수 없다. 가난하지도, 폭력적이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집안이었다. 그저 무덤덤하고 평범하고 무심한 가족들이었다. 그는 왜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불신을 가졌을까 지속적으로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최근 읽은 <예민한 것이 아니라 섬세한 겁니다>(다카타 아키가즈)라는 책에서 예민함은 기질일 뿐이라는 말에 공감했다. 예민함이 기질에서 멈추지 않는다면 정신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의사인 저자가 말한다. 요조는(작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삶에 대한 예민한 기질을 갖춘 인간이지 않았을까. 그것을 기질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뇌하고 번뇌하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사로잡혀 살았던 것이 아닐까. 충분히 부유한 집안이었음에도 일탈을 시작으로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채 집을 뛰쳐나온다. 친구를 불신하고 주변인들을 믿지 않는다. 죽음으로 가기 전 살아온 삶 역시 여자에게 기생했다. 심지어 사랑하는 여인의 불행(혹은 외도일 수도 있다.)을 외면했다. 왜, 무엇이 그를 나락으로 떨어트린 것일까.
이는 어린 시절 요조의 예민한 기질을 받아줄 가족이 없었다는 것, 자라면서 자신의 의지를 불러일으켜 세워줄 진정한 친구가 없었던 것이 원인이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누군가 가까운 사람이 그의 행동에, 그의 예민함에 손을 내밀어주었다면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행동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울한 날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다스려지는 날이 있다. 요조에게 그런 관심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요조를 통해, 인간의 시선이 엉뚱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을 때 길이 아님을 말해 줄 누군가가 있다면, 삶은 전혀 다른 길로 향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의 그릇된 시선에 대해 말해줄 이가 옆에 있다면 나는 인간으로서 실격당하지 않고 생을 마감할 수 있지 않을까.
작년에 읽은 책, 나만의 시선 찾기를 위해 다시 한번 책을 펼쳤다.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읽을 소설로는 무겁고 심도 있게 생각하며 읽으면 인간 본질에 대한 사유가 필요하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