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금이대로 쩡 Jul 26. 2019

“사용하라, 그러지 않으면 잃는다.”

매리언 울프, <다시, 책으로>


다소 무겁지 않을까 생각했던 책이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어 우려했던 것보다는 수월하게 읽혔다. 울프가 말하는 깊이 읽기 능력을 스스로 시험해 본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저자가 말하듯 깊이 읽기를 하지 않으면 깊이 읽기가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모호하게 읽힐 수도 있다. 저자의 이야기대로 깊이 읽기를 해보면 스스로 감퇴되었던, 혹은 감퇴된다고 느꼈던 읽기 능력의 현주소를 찾아볼 수 있다.
 
 ‘읽는 뇌’를 연구하는 저자는 모두 9개의 주제를 가지고 디지털 시대의 읽는 뇌가 가지는 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인류는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다”라고 이야기하는 저자는 순간 접속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깊이 읽기 능력을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냐며 경고하듯 이야기한다. 또한 디지털 매체가 우리 삶에 깊이 스며들고 있고 이미 거스를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어린아이들이 깊이 읽는 것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한다. 본질적인 사고의 과정인 비판, 추론, 반성적 사유와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능력 등은 깊이 읽기를 통해서 통찰의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읽기 회로가 사라지는 시대라!!! 디지털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는 원하지 않아도 쏟아지는 방대한 데이터를 모두 읽어낼 수 없기에 깊이 읽기가 줄어들고 있음에 공감했다. 이미지와 영상으로 대체되는 시대, 깊이 있는 글이 아닌 가벼운 글로 포장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것들은 들여다보고 고뇌하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한번 훑고 지나가는 가랑비 같은 글이다. 이러한 시대에서 저자 울프가 탐색하기 시작한 뇌의 읽기 회로의 변화가 우리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우려 또한 공감했다.

종이책으로 읽은 학생들은 스크린으로 일은 학생들보다 줄거리를 시간 순으로 재구성하는 능력에서 더 뛰어났습니다. 다시 말해, 디지털 화면으로 읽은 학생들은 소설에서 간과되기 쉬운 세부적인 사건의 순서를 놓치는 것으로 나타난 거지요. – p. 126

저자는 초보자 수준의 읽는 뇌로 회귀하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읽기 회로를 찾아가는 실험을 시작했다. 길고 난해한 문장을 읽어내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고 깊이 읽기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을 예로 들었다.

저는 헤르만  헤서의 《유리알 유희》를 읽기 시작하면서 뇌를 한 방 얻어맞는 느낌이 들었지요. 그 책을 읽을 수가 없더군요. 문체는 고집스럽도록 불투명해 보였습니다. 글은 불필요하게 어려운 단어와 문장들로 빽빽했고(!), 뱀 같은 문장 구조는 의미를 밝혀주기보다 저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속도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중략) 책을 집어 들 때마다 누군가가 걸쭉한 당밀을 제 뇌에 쏟아붓는 것 같았지요. --- p.154

나 역시 최근 [인간 불평등 기원론]이라는 책을 ebook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아 종이책을 구매해 줄을 그어가면서 읽었다. 인쇄된 종이책이 디지털 책 보다 집중해서 읽으며 고민하고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아마 저자 울프의 이야기는 이런 예들도 포함하지 않을까 한다. 정말 깊이 읽고 싶은 글은 인쇄물로 읽게 되는 행위 말이다. 물론 저자는 디지털 매체를 거부하거나 부정하지만은 않는다. 나 역시 최근에는 ebook으로 책을 읽는 것을 습관화하고 있다. 부피의 문제도 있지만 휴대하기 편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흐름을 저자 또한 아주 거부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전처럼 양손잡이 책 읽기를 통해 글을 눈으로 슬쩍 훑어보며 읽기 능력이 퇴화되지 않게 서둘러 다시 책으로 돌아오라고 이야기한다.

21세기에 우리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집단적 양심을 보존하려고 한다면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깊이 읽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 p.298

애초에 인간은 읽는 능력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문해력은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후천적 성취 가운데 하나라고 저자가 말했듯, 다시 책으로 돌아오는 것 이 아니라 다시 책도, 함께 하는 것을 권유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인간이 애초에 가지지 못했던 능력을 길러온 역사를 놓치지 않도록 말이다. 또한 디지털 매체의 중독성과 단어를 듬성듬성 건너뛰며 단어와 문장의 연결고리, 아름다운 글 속의 진실과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줄이기 위해 책을 통해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유년기에 길러지는 창의력, 사고력 등을 학습시키는 방법으로 책을 선택해야 함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는 결론에는 백 퍼센트 공감한다.


나 역시, 책 보다 디지털 매체에 익숙한 현대인이다. 읽기의 중요성을 알기에 책을 손에서 놓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순간 접속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 방법은 없다. 읽기를 내려놓지 않기를 스스로에게 바랄 뿐이다. 이 책의 이야기에 공감했지만 이미 읽기를 내려놓은 많은 이들에게 읽히기를 원한다면 조금 더 가벼운 방법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 책을 손에 쥐는 독자는 이미 책을 읽고 있는이들일 테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림 속의 천재 vs 글 속의 고독한 인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