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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Aug 11. 2019

그림 속의 천재 vs 글 속의 고독한 인간

반 고흐, 영혼의 편지

한때 인간 반 고흐에 빠져 지낸 적이 있다.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영화를 봤다. 영화와 함께 100여 명의 작가가 10년에 걸쳐 만들었다는 반 고흐의 기법으로 만들어진 유화 애니메이션을 넋 놓고 보고 또 보았다. 반 고흐는 외롭고 쓸쓸한 사람이었으나 그에게는 그림을 향한 열정이 있었고,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가 살아갈 힘을 만들어 주었던 영혼의 단짝인 태오가 있었기에 행복한 사람이었다.


다시 반 고흐를 꺼내 든 건 꽤 오랫만이다. 반 고흐에게 부모와 다른 형제들의 지지는 없었지만 동생 태오가 있었기에 지금의 반 고흐가 있을 수 있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 일부는 화가이자 친구인 라파트, 고갱, 어머니, 여동생 등에게 쓴 것도 있으나 대부분 태오에게 쓴 편지를 모아 놓은 글이다. 태오는 반 고흐가 평범한 삶을 견디지 못하고 방황할 때부터 그를 지지해주었고 화가가 되겠다 선언한 후 경제적 지원까지 아끼지 않았다. 반 고흐가 삶을 다할 때까지 태오는 반 고흐를 신뢰했고 의지했다. 여동생에게 쓴 편지에서도 형에 대한 애정이 그대로 드러났고 반 고흐가 죽은 지 6개월 후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어 형을 따라 생을 마감할 정도로 반 고흐와 태오는 영혼이 연결된 형제였다. 그런 그의 유해는 형의 무덤 옆에 안치되었다. 그들은 단순한 형제가 아닌 영혼이 연결된 듯 한쪽 영혼이 사라지자 다른 한쪽도 영혼의 불씨가 꺼져버렸다.

<반 고흐 자화상>

사실 미술은 잘 모른다. 반 고흐 영화를 찾아본 것 역시 인간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이 궁금해서였다. 전문가들이 그의 그림을 높이 평가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할 뿐, 전문적인 학식과 지식을 가지지 않은 나로서는 그림은 그저 그림일 뿐일 정도로 무지하다. 하지만 인간 반 고흐를 이해하면서 그의 그림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인간 반 고흐를 조금 더 이해 할 수 있었다. 그가 얼마나 삶을 치열하게 생각했는지, 화가로서 고민한 흔적이 고스란히 보인다. 태오에게는 무엇이든 이야기했고 그것이 그대로 드러나있다. 삶에 대한 이야기, 화가로써 자신의 상황,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고뇌, 동생 태오에게 지원받는 형의 번뇌 등을 적어내려 갔다. 물론 편지의 색이 밝다고 할 수는 없다. 허나 어둡게만 읽히지 않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고뇌가 깊이 묻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정신병원에서 지낼 때조차 그림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았고 끊임없이 그림을 이야기했다. 경제적으로 궁핍했고 동생 태오의 도움 없이는 삶을 살 수 없었지만 그에게 그림은 목숨과 같은 삶이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p.14)


하지만 빈센트 반 고흐는 37년 동안 외로웠고 고독 속에 살았다. 절친했던 라파트와도 작은 오해로 절교를 할 만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그럽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내 속에 갇혀 나만의 생각과 철학으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위대한 작품들이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정말 고독했겠다는 생각을 하면 인간으로서는 여유로운 삶을 살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에 안타까움마저 든다. 그는 그만의 시선과 철학을 가지고 살았다. 비록 살아생전 그림은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것이 어쩌면 그의 철학과 맞지 않았을까 한다. 궁핍한 삶이 화려한 유색의 그림들을 그려냈는지도 모르겠다. 지독한 고독이 그의 그림 속에 천재성을 드러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보았던 영화와 오버랩되며 그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의 가난이, 그의 고독이 그에게는 궁핍한 삶이었을지언정, 그의 그림 속에는 반드시 필요했던 불가항력적 선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만난 그림 속의 빈센트는 천재였지만 글 속의 빈센트는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 한 사람의 인간, 고뇌와 절망 속에서도 삶을 살아내는 지독한 고독 속에 갇힌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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