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불평등 기원론, 장자크 루소
인간 불평등의 기원은 사유재산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인간의 법과 질서는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루소의 추론에 적극 찬성하는 바다. 부를 축적한 부자들은 권력을 가지게 되었고, 권력은 곧 자유다. 자유롭게 권력을 휘두르며 소유한 것을 나눈 계층들과 언어의 합을 통해 법을 만들었다. 소유하지 못한 자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다. 거대하다 못해 이해하기 힘든 그들만의 언어인 법의 지배하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가지지 못한 자는 뒤로 물러나 부자들의 소유물이 되어 그들의 재산을 지켜주는 역할마저 하고 있다.
애초에 땅이라는 것이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모든 인간이 발 딛고 서서 걷고 뛰어다닐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자연으로 존재했던 땅이 개인의 소유물이 되면서 순수한 땅이 아닌 가치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가치 있는 것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는 서로를 비교했고 결국 가치의 저울이 기우는 자가 세상의 중심이 되어 자유를 휘두르고 있다. 가치는 인간이 임의대로 정한 규칙이다. 규칙을 이해하고 가치로 평가해둔 것을 더 많이 소유해야만 부유한 권력층이 된다. 힘이 있어야 법 앞에 평등이라는 진리 아닌 진리를 외칠 수 있다. 가진 자는 우월감과 자만심으로 없는 자를 경멸하고 무시한다. 이는 상대보다 우월하기 위해 시작된 땅따먹기의 시작, 소유 욕망으로부터 비롯됐다.
서울에(어느 대도시든) 집 한 채 가지기 위해 애쓰는 서민과, 집 한 채쯤이야 거뜬히 사고도 남는 부자와의 불평등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시대다. 욕망으로 소유를 갈망하며 쟁취한 부자와 욕망은 있지만 약했거나 소유욕은 있으나 깊이가 다른 서민은 그들과 평등한 삶을 살 수 없다. 누구의 것도 아닌 땅 위에서의 자유가 부와 권력으로 파괴된 것이다. 이는 애초에 인간이 선하냐 악하냐의 문제를 논하는 것과는 다르다. 선과 악이라는 이론과 무관하게 인간의 소유 욕망이 인간의 불평등을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동물과 다른 인간은 언어를 만들었고 언어를 통해 소통하며 그룹을 나누고 그룹은 자신들만의 소유욕을 관철시켰다.
소유 욕망! 그것이 인간 불평등의 시작이지 않았을까. 아직도 함께 사냥해 온 먹이를 균등하게 분배하는 종족은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수평적인 조직에서는 누구보다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는 계층이 없다. 소유 욕망을 버리고 태초의 인간처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소유란 무리를 떠나야 함을 의미하며 무리를 떠난다는 것은 불평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읽으며 가장 깊이 생각한 부분, 물질의 소유가 인간 불평등의 시작이지 않았을까, 지나온 시대도, 현시대에도 여전히 소유가 계층을 나누고 있으며 계층이 곧 불평등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