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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Aug 15. 2019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는 일

몽테뉴 <수상록>

가볍게 산다는 것, 여전히 나는 가진 것이 많고 가지고 싶은 것이 많다. 버린다고 하지만 다시 집안으로, 내 안으로 들어오는 많은 것들을 거부할 수 없어 또다시 자아를 두드려 소리친다. 몽테뉴 수상록과 함께하며 여전히 많은 물질과 생각들에 파묻혀 살고 있는 나에게 상념을 버리며 살아가라 소리쳤다.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방식과 나만의 시선으로 내 삶을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 나답게 살아가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몽테뉴는 젊은 나이였던 37세에 은퇴를 하고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책 속에 빠져 살며 자신의 성찰을 정리한 <수상록>을 쓰기 시작했다.

세상 사람들은 눈앞에 있는 것만 바라본다. 나는 내 안으로 눈길을 돌려 고정하고, 그 안을 부지런히 들여다본다. 사람들은 저마다 앞만 바라본다. 나는 내 안을 들여다본다. 나는 나만을 들여다본다. 끊임없이 나를 검토하고, 나를 분석하고, 나를 맛본다.


늘 가던 길이 익숙해서 소중하지 않았고, 늘 보던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기에 스쳐가듯 지나쳤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나로서 늘 존재하고 나와 가까이 있으며 언제든 ‘나’ 일 테니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남과 비교하고 나를 평가했다. 사실 나 자신을 객관화된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객관화란 나를 바라보고 성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아는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보편적인 인간이기를 원했던 몽테뉴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행복해질 수 있다고 했다.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되는 것은 유혹이며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자기 개선의 전제 조건이라고 했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말일수 있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날것으로 바라보고 객관화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일이다. 자신만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지 않던가.


때론 세상과 타협하지 못한 채 생일 마감하는 완고한 늙은이의 글처럼 고집스럽다. 객관화와 자기 성찰을 넘어선 아집이랄까. 그러나 430년이 지난 그의 에세이 속에서 시대를 넘어선 삶에 대한 통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절친의 죽음과 자식들의 잇따른 죽음, 부모와 동생의 죽음 등이 죽음에 대한 초연한 자세를 가지게 했던 것일까. 유독 '죽음'에 대한 단락에서 삶에 대한 유연한 시선을 가진다.


몽테뉴의 <수상록>은 에세이라는 장르에 어울리지 않게 구구절절 밑줄을 긋게 만드는 책이다. 읽고 또 읽게 만드는 글귀들이 자기 성찰을 써 내려간 단순 에세이로 보기에는 깊이가 깊다. 책을 읽으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여전히 쉽지 않지만 가볍게, 객관적으로, 미니멀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듯 가볍게, 나에 대한 잡다한 상념과 잣대를 내려놓고 바라보는 일이 지금의 나(우리)에게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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