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가 김여환 선생님의 성장과 회복을 위해 나 자신부터 알아보고 가정을 바로 세우기 위해 나의 삐딱함을 찾아 바로 세워보자는 책이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알아보는 것이 삶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는 의미일 테다. 인생이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행복은 누군가 배달해주는 택배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지내는 이들이 많을 뿐이다. 너로 인해, 누군가로 인해, 부모로 인해 불행했다 말하고 환경이, 부모가, 형제가 나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말한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면에 쌓인 정신 성장을 통해 삐딱한 나를 바로 세워 나가는 것이 행복한 삶으로, 선택한 가정의 평화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실천은 힘들지만 단순한 진리다.
엄마의 무표정에 울고 엄마의 미소에 같이 웃음을 짓는 신생아의 영상은 잊히지 않는다. 어릴 때는 몰랐던 '가정환경'이 중요하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이해되기 시작한 것은 나도 어른이 되어서였다. 특히 결혼을 할 때 따지던 집안이 비슷한, 화목한 사람, 가정환경이 좀 불우했다고 해도 사람 자체가 성실하고 극복할 수 있는 사람 등, 부모의 눈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남편을 처음 보던 엄마의 낯선 눈빛, 이리저리 우리 딸과 맞는 사람인지 대화해보는 엄마의 테스트가 꽤 길었다. 다행히 '통과'를 받고 함께 산다. 살아온 환경도,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마저 비슷하다. 살면서 느끼지만 어린 시절 환경과 부모의 모습이 유사했다.
어머니는 아기가 태어나 만나는 최초의 대상으로 아기에게 있어서 세상에 대한 신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중략) 그것이 바탕이 되어 대상들에 대한 신뢰와 불신이 형성되므로 인생 초기에 좋은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은 한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자원이 된다. (p. 15)
몸이 모든 것을 저장한다는 말이 너무 가슴에 와 닿았다. 노인들은 과거 이야기를 하며 세월을 보낸다. 현재의 삶은 이미 생을 마감하는 준비를 하는 것이다. 찬란했던 찬란하지 않았던 과거의 자신은 좀 더 역동적이었고 미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몸이 모은 것을 기억한다.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꺼내어 추억하며 살아간다. 엄마의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을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엄마 시대에 갖지 못할 많은 사진들이 엄마가 얼마나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부유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 부모와 가족 이야기, 초등학교 선생님 이야기는 팔순이 넘은 노모에게도 지워지지 않는 '저장된 기억'이었다.
아들을 끼고 자는 친구가 있다. 남편은 작은방으로 내몰고 초등학교 저학년을 벗어났음에도 여전히 엄마 없이 잠을 못 잔다는 이유로 남편과는 각방, 아들과 한방에서 지내는 친구다. 환경이 삶을 지배한다는 이야기가 왜 충격적인 말인지 책을 읽어보면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다.
어머니를 차지했던 아이는 가정에서 이미 질서를 어겼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생활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질서를 따르지 않고 거스르며 변명과 이유를 대는 방어 구조를 세우게 된다. (p. 23)
엄마를 차지하지 못했던 좌절이 순응을 배워나가는 길이라는 저자의 글은 인생의 진리를 배워야 한다는 것으로 읽혔다. 친구가 내 것이 아니면 탐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아들에게 가르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꼭 이 책을 읽기를 권해보련다.
테헤란로에서 4년을 일한 적이 있다. 남편을 만나고 보니 같은 시기 같은 길을 다녔던 사람이었다. 그 시절을 되돌려 볼 수 있는 영상이 있다면 어느 길에서 우리는 우연히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지하철을 타러 오가는 길 어디쯤에서, 점심을 먹던 어느 식당에서, 커피를 마시던 어느 카페 말이다. 우리는 어쩌면 무의식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4년을 주변을 돌다 드디어 무의식이 의식이 되어 만난 것.
자아 상태에 따라 배우자의 선택은 달라진다. 무의식은 사람을 알아본다. (p. 47)
최근 알게 된 지인은 "결혼... 못했어요."라며 자신이 루저 그룹에 속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결혼이 왜 하고 싶냐 물으니 외로워서란다. 결혼한 나의 답은 결혼해도 외롭다였다. 결혼은 외로움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인간은 언제나 혼자고 외롭다. 군중 속에서도 고독을 느낀다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다. 많이 사람들이 결혼을 하면 외롭지 않고 자신의 빈 곳을 모두 채워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인간과 인간이 만나 양보하고 살아가는 것일 뿐 반쪽 더하기 반쪽이 온전한 하나가 될 수는 없다. 나의 생각이 냉정해 보일 수 있지만 김여환 선생님의 글에서도 이야기한다.
자율적 자아(auonomous ego)는 이드(id)로 부터의 출발이 아닌 그 자신의 기본 성향들과 함께 성장하는 자아를 말하고 있는 것으로 똑똑한 자아는 현실의 충족을 위한 전환 능력을 갖고 있다. 부부는 완성체가 아니다. (p. 54)
배우자는 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며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이 진리라는 것을 알지만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꽃은 꽃으로 보아주어야 아름다운 것이다. 심판관이 되지 않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이 부부가 주체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길이라는 진리를 우리는 가끔 잊고 산다.
남편에게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 때문에"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상대를 비난하는 것이 쉽다. 아무리 자신이 잘못을 했을지라도 우선은 상대를 탓하고 보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공격받고 싶지 않은 심리,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리 말이다. 지난 결혼생활 동안 늘 자신의 잘못이 아니어도 나를 탓하지 않고 상황을 정리해주는 남편 덕분에 서로를 공격하는 일은 거의 없다.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그 원인을 돌리는 심리적 기제는 일종의 방어기제로 이는 나를 보지 못하고 대상을 보며 탓하는 경우를 말할 수 있겠는데 많은 사람들이 투사(projection)를 하며 살아간다. (p. 85)
대화의 첫걸음은 경청이라고 하는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하지만 감정이 복받칠 때 경청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스스로 인지하고 반복 학습을 통해 나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안된다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인지하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나의 경우가 그랬다. 화가 나면 경청하기보다 하고 싶은 말을 먼저 쏟아냈다. 하지만 지금은 돌아서서 시간을 갖고 순서를 정해서 말을 하는 날이 더 많다. 이러한 규칙은 대화를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 결혼생활의 대화는 회피해서는 안 된다. 나의 생각을 무조건 강요하는 것도 옳은 방법이 아니듯, 상대의 생각을 무조건 수용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언제나 조율이 필요하다.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안된다는 생각이 단절을 가져오고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게 된다.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면 부부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장에서는 앞에서도 이야기했던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를 강조한다. 또한 서로에 대한 분석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는 분석이 마치 굴뚝 청소를 하는 것 같다는 표현을 했듯이 내면에 쌓아놓은 억압된 것들을 기억하며 고백을 할 때 마치 고여 있던 물이 물꼬를 트고 흘러가는 것 같은 시원함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p. 145)
페어베언의 말처럼 애도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증오보다 사랑이 커야 한다는 것은 상대의 불편함을 풀어주고받아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어지고 따뜻해져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대화를 단절되거나 일방적으로 차단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관찰자 입장에서 상대의 불편함이 무엇인지 들어주고, 한발 뒤로 물러나 객관적인 시선이 되어줘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함께 사는 부부, 가족, 부모 자식의 관계는 재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를 인정하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상대를 비난하고 평가하기 전에 자신을 이해하고 성장시켜야 관계의 성장도 가져올 수 있다고 정리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자녀로 향하겠지만 나는 부부관계를 중점적으로 책을 읽었다. 남근기의 인격 성숙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야기하는 부분은 부모들에게는 중요한 포인트다. 서두에 저자가 이야기했듯 인생은 누구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다. 누구를 원망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다. 결국 건강한 자아만이 나의 인생도 남의 인생도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자아는 삐딱한 모습으로 살아가다 스스로 깨닫게 되면 바로 세워지는 나무의 받침대 같은 것이 아닐까. 받침대가 무너지면 다시 세우기 힘들어지듯 자신의 모습을 잘 바라보고 스스로 받침대 역할을 어떻게 해주느냐에 따라 나의 인생도, 부부의 인생도, 자녀의 인생도 바로 세울 수 있지 않을까.
아들을 끼고 자는 친구에게 이 책을 꼭 선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