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 <에티카>
인간의 자리는 어디인가
《에티카》가 써질 당시 유럽은 신교와 구교의 30년 전쟁, 갈릴레오의 과학혁명, 회의주의 서적의 소개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종교적 가치가 충돌하고 인류의 기존 지식이 정당 한 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스피노자는 과학과 공존할 수 있는 종교를 모색하고, 인간 이외의 존재를 수단으로 여기는 목적론적 사고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고자 했다.《에티카》는 먼저 신이 자연법칙을 어기고 세계에 개입한다는 기적의 관념과 사후의 심판으로 대표되는 초자연적 상벌 관념을 거부함으로써 당대의 자연과학과 양립 가능한 신관을 주장한다. 또한 신이 인간을 위해 인간 이외의 피조물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목적론이 자연의 도구화로 이어진다고 보고 이를 비판한다. 한편 스피노자는 철학사에서 합리주의자 데카르트의 연장선상에 놓이지만, 이성이 아니라 욕망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욕망은 자기 보존의 힘이 신체와 정신 모두에 관계될 때를 가리키는데, 이는 인간을 정신과 신체로 이루어진 하나의 통일적 존재로 보는 것으로서, 신체성을 인간의 비본질적 요소로 폄하한 데카르트와 상반된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인간의 의지는 자연현상의 일부라는 주장 역시 인간이 정념을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는 의지를 지닌 존재라고 본 데카르트와 대립되는 지점에서 사유의 혁신을 일으킨다.
이분법을 뛰어넘는 대안적 사고
스피노자는 생존 당시 무신론자나 불신앙자로 평가되며 기독교 문화가 지배하던 서구에서 주로 논박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저작이 보급되고 18세기의 범신론 논쟁을 거치면서 19세기에 들어서는 괴테와 헤겔, 쇼펜하우어와 니체,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이르는 많은 철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 절대적 관념론자와 마르크스주의자는 자신의 이론과 흡사한 내용을 스피노자 저작에서 발견했으며, 경험론자도 그의 인식론과 심리학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발전시켰다.
스피노자의 사상의 현재성은 오늘날에도 새롭게 발견되고 있다. 목적론적 사고를 비판하는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인 사고, 이타주의와 이기주의의 양자택일을 넘어서는 제3의 윤리, 자연권과 시민권의 연속성, 합리주의와 신앙주의라는 극단을 피하고 실천의 문제를 강조하는 종교관은 이분법의 경계를 넘어선 제3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한 스피노자는 정서의 적극적인 윤리적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불행과 고통에 대한 좀 더 현실적인 진단과 처방을 가능케 한다. 이 같은 스피노자의 인간관은 이성에 대한 맹신이 비판받고 있는 21세기에 대안적 인간관과 윤리를 위한 하나의 모델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서평>
모든 고귀한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드믈다.
물질과 정신의 분리를 주장했던 데카르트의 주장과 달리 스피노자는 기하학을 통해 철학으로 통합하려 했다. 그의 철학에는 ‘신’이 아닌 ‘인간’이 중심에 있으며 인간의 행복을 고민하며 신을 증명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선택하기 전 신승철의 <눈물 닦고 스피노자>를 먼저 읽고 스피노자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선행학습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상태에서 <에티카>를 펼쳤다. 줄을 긋고 메모를 하고, 심지어 다른 이들의 평을 모아 100여 페이지의 프린트물을 읽었다. 그럼에도 <에티카>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사실 자신은 없지만 노력했던 시간 속에서의 짧은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정서(신체)는 외부 자극을 받고 변용을 일으킨다고 했으며 신체 상태에 따라 표상하고 일치점에서 보편 개념을 만들어 간다고 했다. 변용에 의해 사유하고 선과 악의 개념 또한 자신의 정서로 판단하고 평가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믿고 바라보는 선과 악은 나만의 기준뿐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그의 이론에 의하면 선과 악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외부 자극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결국 선과 악, 좋고 나쁨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외부 자극에도 평점심을 잃지 않고 정념에 휩싸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스피노자의 '지성'을 말한다. 개개인의 지성이 얼마나 든든해야 '자신을 더 완전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이성적인 코나쿠스(생존의 노력, 지속하려는 힘) 상태가 될 수 있을까. 또한 신과 나와 사물의 인과 관계를 인식하고 각 존재의 무한성과 유한성을 인식하며 명석하게 판명되는 관념을 가져야 한다는 그의 이론은 이해했으나 분명한 것은 올바른 지성을 갖춰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이 모든 사물의 존재 이유를 자신의 목적에 맞춰 생각함으로 사물은 인간을 위해 창조된 존재로 이해하고 있다는 대목에서 인간의 일방적인 편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인간이 자유롭게 태어났다면, 그들이 자유로운 동안에는 아무런 선과 악의 개념도 형성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갓 태어난 아기는 선과 악의 개념과는 무관한 새로운 세상을 만날 뿐이다. 나에게 이로운 것은 '선', 해로운 것은 '악'이라 칭할 뿐 그것의 정당성은 어느 누구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결국 스피노자의 윤리는 혼란스럽고 부적합한 인식과 감정을 가진이들이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을 가지고 올바른 인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부정적이며 나쁜 감정들은 힘이 세고 강력하다. 힘이 센 감정을 누를 수 있는 자신의 더 강력한 평정심을 통해 자신의 정서를 다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스피노자 치유 철학이지 않을까.
제1부 신에 대하여
1부는 신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고자 쓴 글로 보인다. 스피노자 무신론자라는 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에티카 1부의 이론 때문이지 않았을까.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자신 안에 존재하거나 아니면 다른 것 안에 존재한다는 것, 신이 실체 하지 않기 때문에 신의 존재는 인간보다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정의한다. 데카르트가 생각했던 실체와 신의 개념과 스피노자의 개념은 달랐다. 인식하는 내가 있으니 인식되는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존재와 인식의 분리(데카르트)냐 합(스피노자)이냐의 이론을 이야기한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신은 무한하고 절대적이기 때문에 실체를 가질 수 없다고 했다. 인간은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대상을 자신의 관점에 따라 이해하는 것으로써 오류를 가지며 자신들은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제2부 정신의 본성과 기원에 대하여
사유는 신의 속성이고 신의 본질에 생겨나는 모든 것에 관념이 존재한다. 관념은 원인을 인식하므로 외부 자극에 의해 변용을 일으킨다. 의지가 지성보다 더 확장될 수 있기 때문에 지성과 별개이다. 어떤 대상이 또 다른 것보다 더 뛰어날수록 그 관념은 또 다른 것보다 더 완전하며 자유의지에 의해 결과를 내지 않고 '뷰리당의 암나귀'처럼 평형 상태에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반론을 제기한다.
제3부 정서의 기원과 본성에 대하여
자연 안에서 자연의 결함 탓으로 여길 수 있는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스피노자의 말은 증오, 분노, 질투 등의 감정들도 그 자체로 고찰된다면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필연성과 힘에서 생겨난 것이므로 우리가 인식하고 특성들을 가치 있게 받아들인다면 본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 것인가로 정의할 수 있다. 자연은 항상 한결같고 자연의 힘과 활동능력은 언제나 동일하기 때문이라는 그의 지론에서 보면 모든 물체의 기원과 본성의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안다면 논리적으로 증명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제4부 인간의 예속 혹은 정서의 힘에 대하여
인간의 모든 감정은 기쁨, 슬픔, 욕망으로 환원되므로 이성에 의해 결정되는 활동이 아닌 다른 활동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으로 증명한다. 인간의 무능력을 예속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권한 하에 있지 않고 운명의 권한 하에 있다. 완전성과 불완전성은 사실 사유의 양태들, 즉 우리가 같은 종 혹은 같은 유의 개체를 서로 비교한 결과 고안해낸 개념일 뿐이다.(p. 49) 인간의 무능력에 대해 드물게 말하며 일상적인 대화에서 결점들을 언급하는 데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5부 지성의 역량 혹은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정서에 대해 절대적인 지배력을 가지지 못하며 의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절대적으로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서를 통제하기 위해 적지 않은 훈련이나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성이 완성되어야 하는 것은 결국 불교의 수행론적 개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신체와 연관된 정신 능력과 신체와 무관한 정신 능력을 고찰하고 이성에 의해 정서의 명석판명한 인식, 신에 대한 이성적인 사랑, 정신의 영원성에 대한 경험, 직관지의 가능성의 조건과 신의 지적인 사랑을 이야기한다.
책의 절반이 해제로 구성되어 있다. <에티카>는 그냥 읽어내기에 너무 어렵다. 다행히 해제를 통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1. 데카르트를 넘어선 스피노자
데카르트와 상반된 의견을 이야기한 실체, 정신과 신체의 관계, 자유에 대해 해제한다. 데카르트의 책을 읽지 못했으나 그의 이론이 무엇인지 좀 더 상세히 알 수 있었고 대비하여 스피노자의 이론을 해석할 수 있었다.
2. <에티카>는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가
신이 인격적 존재가 아님을 목적론과 의인론적 신관에 대한 비판을 이야기하고 아는 만큼 긍정하고 긍정하는 만큼 안다는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의지론을 비판했다. 또한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만물은 자기 보존의 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동등하다고 이야기한다.
3. <에티카>는 서양 사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신의 존재가 절대적이었던 17세기의 무신론자 스피노자는 신학을 비판하고 실체의 통일성과 결정론을 주장했다. 18세기 범신론과 카발라주의가 스피노자를 해석했으며 미신, 성서의 비판, 종교 비교를 이야기하는 익명의 스피노자적 주제들이 발견됐다. 이외 범신론의 논쟁, 19세기 다양한 유신론적 이미지가 부각되며 스피노자의 또 다른 인식이 부각되었으며 독일, 쇼펜하우어와 니체에서 스피노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4. 스피노자 사상의 현대적 의의는 무엇인가.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이분법을 거부하는 스피노자의 윤리석은 정치철학 분야의 새로운 발상들로 이어진다.(p.138) 정글의 법칙을 주장하던 많은 학자들과 달리 자연권과 시민권의 분리를 거부하며 실체의 본질을 달리 바라봤다. 민주주의 발전에서 이러한 스피노자의 주장들은 매우 유용했으며 실천적 지침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인간다운 생활에 필요한 모든 요건을 국가에 주장할 권리가 있고 자신들의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 시민들이 투쟁을 할 수 있었던 밑바탕이 될 수 있었다. 스피노자는 신민들의 복지를 잘 보장함으로써 마음을 지지하며 민주주의 국가 주권의 절대적 성격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p. 141) 목적론적 관점이 아닌 인간의 힘을 위축시키는 정서들에서 벗어나 기쁨과 긍정하는 '기쁨의 윤리학'을 이야기한다. 끝으로 인간의 신체와 정신은 모두 통일적 존재로 보고 현재성을 지닌 인간이 이성이 아니라 욕망이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이성에 대한 맹신을 비판하고 대안적 윤리관과 윤리를 위한 하나의 모델을 제시해 줄 수 있다고 해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