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아,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남녀공학인 학교를 다녔는데 일주일에 한번 남자는 교련(기술), 여자는 가정 수업을 하기 위해 다른반 친구들과 모여 수업을 했었다. 우리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왜 우리는 가정 시간에 모여 바느질을 하고, 전을 구웠으며 집안 일을 얼마나 더 '잘'하느냐에 대해 교육 받았던가. 남자아이들처럼 넓은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차고 야구를 하고 배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운동장의 공간은 늘 한정적이었고 중앙이 아닌 사이드였으며 늘 피구를 해야했다. 최근 김하나, 황선우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책을 읽으며 어쩌면 저렇게 똑똑한 '여자'들일까 감탄했다. 그들은 여자로써가 아니라 인간 자체로써 자기 자신을 책임지며 살아가겠다는 의지로 삶을 살고 있었다. 여자 남자가 아닌 사람!
주변에 미혼이 아닌 비혼이 많고 그들의 삶이 불행하거나 불완전해 보이지 않는다. 어렸을 때의 나 역시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랐고 시대와 환경이 나를 '가정'이라는 과목을 배우는 것에 의문을 갖지 않도록 키워졌다. 서른이 넘어갈 즈음 '왜?'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것이 페미니즘이든 무엇이든, 부당함을 부정하지 않고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똑같이, 어쩌면 남자들보다 더 지독하게 에너지를 뿜어내며 일했던 여자들에게만 유독 부당한 일이 생겨났다. 부당하다 소리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뒤로 조용히 물러나야만 '여자'로써 제대로 된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하는 주변인들이 많았다. 그런 상황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사회를 살았던 저자가 말한 '보이즈클럽'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나의 파이를 키워가는 여성이 되고자했다. 그렇게 애쓰다 보면 나이가 들어 소멸되는 여성들을 위한 우먼클럽도 구축되고 보이즈클럽에 대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탁월한 재능을 가진 여성조차도 조직 내 끌어주는 인맥 없이는 장기적으로 배제된다는 사실 역시 당시엔 알지 못했다. 회사 생활을 10년 가까이 했으면서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자신들의 이익이 걸린 진실의 순간에 '보이즈클럽'이 얼마나 똘똘 뭉쳐 그들만의 리그를 지켜내는지도 내 문제가 되기 전까진 몰랐다. p.40
여성의 배제는 어느 조직에서나 여전히 진행중이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같은 직위에 올라갈 확률이 낮으며 육아휴직은 여성이 우선이며 육아를 위한 경력단절도 여성이 많다. 그것은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신이 만든 남성과 여성의 원초적인 성향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부성애보다 모성애가 강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런 이유로 육아를 위한 집착(?)도 여성이 강한 편이다. 보이즈클럽과 같은 여성 연대가 이뤄지기 힘든 이유는 여자들에게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건 너무 시대에 동떨어진 생각일까.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있다. 서글프지만 사실이며 그것이 여성 연대 실천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늘 느끼고 있다. 일 몰아주기, 우먼 클럽 운영하기등이 과연 여성 연대의 실천이 될 수 있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보다 여성들의 인식 변화가 더 필요한 시대다. 모성애를 버리라는 것은 아니지만 철저히 분업화된 가정이 필요하며 남자 우선주의 조직에서 단념하지 않을 의자가 필요하다.
요즘 나와 내 주변 여자들은 여자에게 일 몰아주기를 실천하고 있다. 은밀하고 무해한 음모 수준으로. 행사에 여자 강사를 초빙하고, 여자 필자를 섭외하고, 여자 사진가를 부르고, 여자 보험설계사를 쓰고, 누가 소개해달라고 하면 "일을 잘해서요"라면서 여자를 추천하고, 어떻게 해서든 여자가 돈을 더 벌고, 일과 커리어를 지속할 수 있도록 서로의 사다리가 되어 주는 것. 영화 <히든 피겨스>속 대사처럼 누구의 도약이든 우리 모두의 도약이 될테니까. p.62
여자들의 모임만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해 나갈 수는 없다. 전통적인 가치관이 흔들리며 여성의 지위가 올라간 것은 남자들 사이에서 여자가 우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며 배재하려던 여자가 남자에 비해 똑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똑똑한 여자들을 발견한 남자들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할까 두려워 으르렁거리며 보이즈 클럽을 만들어 쉽게 침범하지 못하게 만든것이 아닌가 말이다. 여자들끼리 모여 일 몰아주기를 한다던가, 여자들끼리 모여 추천하고 사다리가 되어주는 것이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먼클럽을 만들어가가기 위해서는 남자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빠른 길이지 않을까. 여자들의 뒷받침이나 희생이 없었다면 남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지 못했던 것과 같이 여자의 지위를 위한 남자의 희생(?)은 필수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희생인지 알지 못하고 당연히 그래야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남자를 지원했던 것처럼 말이다.
남자를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자들에게도 분명 같은 기회가 주어줘야 하고 집안일이나 육아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신의 실력을 뽐낼 수 있도록 누군가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모든 남자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더 실력이 있다면 남자들이 뒷받침이 되어 뒤따라 올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남자들의 인식의 변화들이 더 절실하게 필요하다. 남녀의 구분이 아니라 '사람'의 실력으로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는 사회가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과도기지만(언제까지나 과도기로 남아있을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남녀의 성을 가지고 페미니즘이니, 남성우월주의니 하는 것들을 이야기하지 않는 시대가 반드시 오지 않을까. 아니 꼭 와야하지 않을까. 실력 있는 리더가 있으며 '그의 성이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는 사회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