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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May 14. 2018

상대방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말자

“저 사람은 왜 저럴까요?”      

 자신의 마음도 모르며 사는 게 사람인데 다른 사람이 왜 저러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마음도, 자신의 마음도 무엇이 정답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이 정답 인냥 자신에게 맞춰 상대가 바뀌길 기대한다.      



 아는 지인은 여유로운 시간을 힘들어한다. 일찍 일어나 아침 운동을 하고 출근한다. 퇴근 후 요일마다 배우는 게 다르다. 배우는 게 없는 날은 술 약속이 있거나 혼자 영화라도 보러 간다. 주말은 더더욱 바쁘다. 그를 만나려면 최소 2주 전에 연락해야 약속 시간을 잡을 수 있을 만큼 바쁘다. 결혼도 했고 아이가 있음에도 가족과 함께 하는 여유로운 시간은 사치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에게 동생이 있다. 프리랜서라 집에서 일하며 급할 것 없이 여유롭게 사는 모양이다. 일이 있으면 일을 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먹고 살만큼의 돈만 벌면 된다는 주의다.       


“아니 세상에 이렇게 배울게 많고 할 일이 많은데 왜 저러고 사는지 모르겠어! 뭐라도 하라고 내가 노트북도 큰 맘먹고 사줬는데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어! 나는 저렇게 못살아! 진짜 이해할 수 없어!”      


 열변을 토한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님에도 상대를 바꾸려고 한다. 동생은 바쁘게 사는 지인의 건강을 걱정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리라.      


  상대를 바꾸려는 것은 잘못된 삶이나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을 고치고 싶은 마음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을 두고 바뀌길 기대한다. 상대도 생각하는 기준이 있다. 자신도 상대의 기준에 맞춰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봐야 한다. 서로의 기준에 맞추지 않으면 기대만큼의 변화는 쉽지 않다.      


  연인 사이 사소한 다툼이 발생했을 때 “네가 잘못한 거야. 네가 고쳐.”라며 상대에게 책임을 돌리며 바꿀 것을 요구한다.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바꾸라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설령 상대가 바뀐다 해도 그것은 일시적일 뿐이다. 사랑하니까, 연인이 원하니까, 평온한 관계 유지를 위해 참은 것일 뿐 바꾼 것이 아니다. 잘못됐다 생각하고 바꾼 것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난 ‘갈등’을 일시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행동일 뿐이다.      


 다른 사람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는 것은 자신이 짜 놓은 틀 안으로 들어가길 바라는 것이다. 자신도 상대의 틀 안에 들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상대도 마찬가지임을 알아야 한다.      

지하철에서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다.
“임신이 무슨 대단한 벼슬이냐. 우리 때는 애 낳고도 바로 밭에 가서 일했다.”
그 시대 어머니들은 벼슬보다 더한 일을 하고도 대접받지 못했을 뿐이다. 유교적인 사상을 기준으로 무조건 여자들의 희생을 강요했다. 변하는 사회의 인식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서슴지 않고 내뱉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런 사람을 보면 ‘기대를 말자’하고 돌아 선다. 변화를 받아들일 자세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각하지 않는 이상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자각하더라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주의를 기울여야 변화한다. 결국 상대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어도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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