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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Oct 07. 2018

'경험'이 쌓이면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어린 시절, 엄마가 형형색색 코끼리 그림이 그려진 팬티를, 무려 세 장이나 사다 준 적이 있다. 입기도 아까워 아꼈는데 엄마는 새 옷은 빨아 입어야 한다며 세탁을 해버렸다. 왜 남의 속옷에 손을 대느냐 도리어 화를 내고는 내 손으로 다시 빨아 빨랫줄에 걸어뒀다. 어린아이였지만 내 손으로 씻어 입고 싶을 만큼 소중했던 것이다. 언제나 흐릿한 꽃무늬 팬티만 입는 것이 너무 싫었는데 선명한 코끼리 그림이라니!!!

< 이런 느낌일까? >

빨랫줄에 널린 팬티 세장을 창문으로 내다보며 '내일 아침 만나자'는 인사까지 잊지 않았다. 시골의 빨랫줄은 집 밖이라  혹여 누가 데려갈까 걱정이 되어 몇 번을 확인하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눈을 비비며 안방 창문 앞에 섰다. 내 이쁜 코끼리 팬티!!!

어? 내 코끼리 팬티!!!

저녁에 걸어둔 빨래가 겨울밤에 모두 말랐을 리는 없을 터. 혹시 밤새 잃어버릴까 엄마가 거둬두었나? 부랴부랴 부엌으로 달려가 확인했다. 아니란다. 청천벽력(靑天霹靂).


누군가 내 팬티를 훔쳐갔다. 팬티 도둑.


이전에는 한 번도 빨래를 잃어버린 적이 없었으니 누군가 내 코끼리 팬티를 봐 뒀다가 늦은 밤 찾아와 가져간 것이다. 나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꽤 오래 울며불며 코끼리 팬티를 다시 사달라 졸랐던 것 같다.


얼마 전 오랫동안 준비했고 여러 사람이 함께했던 일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회신을 받았다. 아니 이번에는 허락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나는 이미 미승인을 확인하고 허탈해하고 있는데 지인이 흥분해서 전화가 왔다.


"확인해봐!!! 확인해봐!!! 00은 됐대."

"메신저 못 봤어? 우린 안됐어."

"뭐라고???"


그 누구도 안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모든 일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준비하지만 이번만큼은 모두 확신에 찼었다. 우리는 '안될 리가 없다'라고 생각했다.

왜지? 왜 그렇지? 아! 이게 뭐지?

상대의 대답을 바라는 말이 아닌 각자 자신만의 의미가 담긴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전화기를 내려놓지 못한 채 대화가 아닌 대화를 했다.  


나는 그 순간, 어린 시절 잃어버린 코끼리 팬티가 생각났다.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코끼리 팬티를 잃어버렸을 때의 상실감, 허탈감이 내 마음을 스쳐갔다. 깨끗하게 빨아놓은 코끼리 팬티를 누군가 몰래 훔쳐가 버린 기분. 분명 내 것인데 누군가에게 빼앗긴 기분.


그래도 마지막은 희망적인 대화로 마무리했다.

조만간 만나서 다음 전략을 세웁시다!

분명 내 것을 빼앗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 잃어버린 코끼리 팬티를 누가 찾아주길 바라는 심정이었다. 성공한 그들은 우리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이었을 테고 우리는 준비가 미흡했기에 성공하지 못한 것일 뿐임에도 말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이번에는 '경험'을 선물 받았다고 마음먹기로 했다. 잃어버린 코끼리 팬티를 찾아달라 울며불며 매달리는 어린아이처럼 그것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애초에 코끼리 팬티는 내몫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내게 주어지지 않은 기회를 탐하고 애써 봐야 다음 기회를 준비할 시간만 낭비할 뿐일 테니 언젠가,

'경험'이 쌓이면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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