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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Oct 09. 2018

나란 무엇인가?

  지난 주말, 가을이 오면 해보자 약속했던 한강 자전거 타기를 했다. 한강 자전거 타기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 일이다. 어쩌면 타본 적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을바람을 맞으며 한강을 달리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오후 햇살이 뺨을 간지럽히고 바람은 그 햇살을 밀어냈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오르막이 나타났다.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아 보았다. 이내 다리에 힘이 빠져 다 오르지 못하고 자전거에서 내려 걸었다. 그렇게 자전거와 함께 걷다 보니 내리막을 만났다. 다시 자전거에 올라 내리막을 내려오면서 다리의 자유를 얻었다. 오르막에서의 고통이 내리막에서 자유를 선물한 것이다.      



 자전거 페달 위에 발을 올려놓고 내리막을 내려오면서 ‘나는 자전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평지에서 자전거는 내가 원하는 속도로 나아갈 수 있다. 천천히 갈 수도, 빨리 갈 수도 있다. 오르막에서 자전거는 있는 힘껏 허벅지의 힘까지 보태야 겨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아무리 빨리 가려고 해도 운동선수가 아니니 힘이 빠지고 무릎이 아파 결국 자전거에서 내려걸어야 한다. 내리막에서 다리는 자유롭다. 하지만 손으로 브레이크를 잡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으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나는, 그런 자전거다.

 나는,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쉬이 흥미를 잃어버리는 타입인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호기심이 많아서일까? (예를 들면) 운동이 그렇다. 필라테스, 요가, 수영, 벨리댄스, 검도, 테니스, 배드민턴, 탁구, 재즈댄스, 살사, 탱고 등 수많은 운동을 배웠다. 적당히 배웠다 싶으면 다른 운동이 배우고 싶어 진다. 그래서 그 많은 운동을 적당히는 할 수 있지만 엄청나게 잘 하는 것은 없다.


 운동은 내게 평지에서 페달을 밟고 가며 만나는 코스모스 꽃과 같다. 그러니 급할 것도 목숨 걸고 파고들 만큼의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페달을 밟지 않으면 코스모스를 볼 수 없으니 적당한 힘을 주어 앞으로 나아가는 자전거가 된다.         


 나는, 어떤 부분에서는 민감하고 집요한 사람이다. (예를 들면) 음식이 그렇다. 열아홉 살까지 끼니마다 따뜻한 밥과 국, 신선한 채소 위주의 식사를 했다. 스무 살이 되어 부모님과 떨어져 살기 시작하면서 그 식단과도 작별했다. 그 후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요리된 음식들이 내 몸으로 들어오면서 민감성 대장 증후군을 선물 받았다. 중요한 회의나, 오랜 시간 버스를 타기 전에는 절대 음식을 먹지 않았다. 어려운 자리에서는 채소 위주로 식사를 했다. 정말 먹고 싶은 기름기 많은 음식은 주말에 작정하고 먹어야 할 만큼 불편한 생활이었다.


 그런 생활을 한참 하고서야 식습관을 개선하고 민감성 대장 증후군을 떠나보낼 수 있었다. 그 후 다시 민감한 대장을 만나고 싶지 않아 음식에 대한 집요함이 생겼다. 물론 어릴 때부터 익숙한 엄마 음식이 나를 끌어당겼던 것이겠지. 가능하다면 내 손으로 직접 밥을 해 먹고 조금 비싸더라도 좋은 식자재를 고집한다.


 나는 그렇게 음식에서만큼은 허벅지의 온 힘을 다해 페달을 밟는 자전거가 된다. 물론 그러다 너무 힘이 들면 페달을 멈추고 불량(?) 식품을 먹기도 한다. 하지만 오르막을 올랐을 때의 쾌감을 알기에 온 힘을 다해 끝까지 오르는 자전거가 된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도 쉽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사람이다. (변명해 보자면) 건강하던 시절에는 힘이 있고 멋있는 아빠를, 긴 시간 투병하던 시절에는 힘이 없고 지친 삶을 살다 떠난 아빠를 가졌다. 건강하고 힘이 있던 시절의 아빠에게는 수많은 친구가 있었다. 아프면서 그 많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아빠 곁을 떠났다. 진정한 친구인 양 아양을 떨던 사람이 힘이 없어진 아빠에게 등을 돌렸다. 또는 건강하던 시절의 아빠에게는 감히 범접할 수도 없었던 사람이 술 취해 찾아와 횡포를 부릴 때도 있었다. 다음날 멀쩡한 정신으로 읊조리며 사과했다.


 그런 일을 겪는 아빠를 보며 ‘어른’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많다는 것을 어린 시절의 나는 알아버렸다. 그래서 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일에는 진중한 편이다. 면밀하게 살피며 진정으로 내 사람인지 알 때까지 천천히 다가간다.


 내리막에서 자전거는 다리의 자유가 있다. 하지만 손의 자유는 없다. 브레이크를 잡는 손에게마저 자유를 준다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을 사귀는 일에는 반드시 브레이크를 잡고 가는 자전거가 된다.     


 자전거 보관함을 보면 사용하지 않아 먼지가 끼고 녹슬어 버린 자전거가 많다. 그런 자전거는 끝내 폐기될지도 모른다.


 나는 녹슬지 않도록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줘야 하는 자전거다.


 평지에서, 오르막에서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야 하고 내리막에서는 손으로 브레이크를 잡아야 하는 자전거다. 언젠가 지쳐 평지에서도 속도가 느려지고 가파른 오르막과 경사진 내리막을 빠르게 달리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속도의 차이일 뿐 여전히 앞으로 달려 나아가는 자전거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나일 것이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자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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