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매일 심심하겠다

언제부터 할아버지 걱정을 했다고

by 김춘삼

요즘 따라 94세 할아버지의 일상이 궁금해지고 때로 슬퍼진다.


지난 4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르신들은 예기치 못하게 다치고, 이따금 심히 앓기도 하면서 회복하는가 싶더니 다시 위독해지곤 한다. 할머니도 그랬다. 이웃의 친절이 생명의 위협이 될 줄이야 할머니는 몰랐을 것이다. 사실 그게 주된 원인인지도 모르겠고.


2년 전 할머니를 내 결혼식장에서 뵌 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할머니는 올해 2월 어지럼증이 심해 음식 섭취가 어렵게 되고 얼마간 입원 치료를 받으셨다. 폐에 물이 차고 다른 장기가 손상되면서 4월에는 중환자실에 의식 없이 계시면서 할머니의 아들 딸들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정확하지 않지만 내막은 이렇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 사시는데, 할머니가 이웃이 준 음식을 먹고 어딘가 체한 듯싶더니 그대로 며칠 버티셨던 모양이다.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던 김천에 사는 외아들은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갔다. 더 큰 병원으로 옮기며 의사들의 진단이 여러 차례 바뀌었고 가족들은 불안했다. 그 시기 내가 아는 가장 덤덤한 사람인 엄마가 크게 흔들렸다. 일주일 정도는 제법 호전되셔서 일반병실로 옮기기도 했다. 워낙 깔끔하셨던 분인지라 안정을 취하셔야 했는데도 기어코 씻으셔야 한다면서 성질을 내셨다고 했는데 그 모습에 다들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때 엄마랑 오빠가 내려가서 면회하고 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일주일 후 어느 날 새벽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가족들은 할머니가 중환자실과 일반병실을 오가며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었던 터라 생각보다 차분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한데 모인 친척들을 보며 느꼈다. 아, 앞으로 이렇게 모두 다 같이 모일 때는 이 중 어느 누군가의 장례식 때가 아닐까? 나이 든 이모 삼촌의 얼굴을 보면서 나도 곧 30 중반이 되어가고 있음을 새삼 느꼈다.

코로나 19로 조문객이 띄엄띄엄한 장례식장에서, 할아버지는 노쇠한 몸으로 할머니 곁에서 삼일장을 보내셨다.


할아버지는 북에서 내려와 할머니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되면서 할머니를 소위 '보쌈'해오셨단다. 그 시절 댕기 머리였던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만나 신식 헤어스타일 '단발'을 처음 하게 된다.

내가 아는 할아버지는 참 영리하시고 센스 있는 분이시다. 어릴 적 나는 할아버지가 가끔 날리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긴장을 자주 했었다. 똑똑한 손녀처럼 보이고 싶어서 머리를 굴렸는데 할아버지한텐 속마음이 다 읽히는 듯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흥미로운 주제로 말도 많이 하시고 맛깔나게 '라떼'를 읊어주시던 할아버지.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술병을 따던 할아버지였는데, 어느새 정말 늙으셨다. 말수는 거의 없어지고 대화를 하려면 보청기를 끼셔야 한다. 걸어 다니시는 것조차 힘겨워 보인다.


죽음과 가까워가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삶은 어떨까. 눈과 귀가 어두워 취미 생활이라곤 즐길 수 없다. 독서? 산책? 불가능하다. 소화 능력도 떨어져 맛있는 음식 먹기도 영양분을 고루 흡수하기도 힘들다. 가장 편안히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TV 앞에 앉아있는 것이지 않을까? 할아버지한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면 금방 얘기 거리가 없어진다. 할아버지는 내 직장 생활을 물으시고, 난 할아버지의 건강을 여쭙고, 그렇게 두어 번 말이 오가면 끝이다.


가장 평범한 질문, "오늘은 뭐하셨어요?"라고 묻기가 미안하거늘 무슨 이야길 이어갈 수 있을까.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할아버지의 딸들이 돌아가며 할아버지 댁에서 일정 기간 머물고 있다. 할아버지의 식사를 차려드리고 생활을 돕는다. 이번 주는 엄마가 내려가 있다. 엄마는 시골 생활이 너무 심심해서 버스 타고 한 바퀴 돌고 왔다고 한다. 답답하다고, 대전 어딘가에서 핑크뮬리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할아버지는 매일 심심하겠다" 같이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으니까.


"그래 내가 가게 될 길이겠지"

30대인 나도 60대인 엄마도 90대인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지금을 향해 가고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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