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말아먹고 있는 건가

위기의 주부

by 김춘삼

10년 전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평생에 흘릴 눈물 2/3쯤은 다 흘렸다고 생각했다.


그 후 웬만한 일에는 울지 않게 되었는데, 간혹 드라마 <동백 꽃 필 무렵> 이라던가 <악의 꽃>과 같은

크게 연관성 없는 창작물을 보며 어떤 포인트에 꽂혀 격하게 눈물 콧물 쏟곤 했다.

하여간 요즘은 예고도 없이 서러움이 밀려와 소리 내며 우는 일이 생긴다.


회사를 옮기고 나서 맞이한 첫 월급날이었다. 수습 기간이기에 급여의 90%를 받는 것을 알고는 있었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늦게까지 고생했다는 수고의 의미에서 소정의 인센티브가 포함되어 있지는 않을까 기대를 했었나 보다. 하지만 계좌에 꽂힌 금액은 정직했다. 몸과 마음이 고생한 바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모든 의욕이 상실되었다.


내 노동은 회사에서 끝나지 않는다. 퇴근 후 집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치우는 일, 오래된 식재료 폐기하고 다시 온라인으로 주문하기, 개판이 된 집을 정리하고 청소하고 빨래 돌리기, 화장실 청소하기... 이 모든 걸 훌륭하게 해낼 능력이 없어서 때때로 배달 음식으로 식사를 때우고, 쓰레기를 쌓아 올리고, 주말까지 온갖 귀찮은 일은 미루어 놓았다가 한꺼번에 쳐내고 다시 한 주를 시작하는 사이클에도 질릴 만큼 질린 것이다. 회사를 옮긴 후 야근이 늘고 체력 소모가 많아지자 집안일이 너무 버겁고 짜증스럽다.


10년 전의 나와 현재의 나를 가만히 놓고 비교해 보면 조금도 나아진 게 없는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불만이 많고 불안하고 앞날은 불투명하고 발전이 없고 앞으로도 그런 여생을 보낼 것만 같았다. 얼마 전엔 친정에서 내 어린 시절 사진을 모아왔는데, 환하게 웃는 사진이 거의 없고 하나같이 어둡거나 입술 대빨 나와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 그 나이에 억울할 일이 얼마나 있다고 찍히는 사진마다 뾰루퉁해 있는지... 어쩌면 타고난 기질 자체가 우울함을 베이스로 깔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마음 너그럽고 돈도 잘 버는 남편을 만나 남들이 부러워하는 결혼을 한지도 2년이 훌쩍 지났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내가 남편에게 '내 인생에서 가장 평온한 시기'라며 감사하다고 했는데, 어제는 '내 인생의 최대 위기'라면서 화내고 울부짖었다. 그러던 와중에 친오빠의 말 한마디가 내 분노를 극으로 치닫게 만들었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엄마와의 식사 자리를 찾고 있었다. 예약을 했어야 했지만 그날은 예약을 받지 않는다기에 그냥 가서 먹자 했다. 그래서 욕을 먹었다. 내가 분가하고 나서 오빠와의 만남의 횟수는 일 년에도 손을 꼽을 정도로 적어졌는데, 날 볼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네가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냐'. 5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남매지간에 하나는 서른 중반, 또 다른 하나는 마흔을 코앞에 두고도 티격태격하면서 독설을 주고받는 막역한 사이라 하더라도, 도저히 평소처럼 그냥 넘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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