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퇴사 후 무기력 극복기

나 딱 2주만 아무것도 안 할게.

by 김춘삼

꽤 빈번한, 반복적인 퇴사 후 의식처럼 찾아오는 것이 있다.
바로 무기력증...

회사 다닐 땐 나름 정성스럽게 일했다. 다만 직장이 없어지고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일어날 필요가 없어지면 그 시절이 꿈만 같게 하염없이 게으름을 피우고 허무해진다.


얼마 전까지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에서 빈둥대기도 했고 - 식사를 챙기는 게 너무 귀찮아서 몹쓸 신경질을 부렸다. 퍼질러 자다가 일어나면 왜 항상 식사 때 인지... 잘 안 먹고 건강이 안 좋아지는 건 또 무서워한다. 알약 한 알에 한 끼의 영양을 담은 식품이 나온다면 소원이 없겠다. 1초 컷으로 꿀떡 삼키면 식사 끝이니까!


퇴사를 결정할 때마다 남편은 그다지 날 나무라지 않는다. (그렇다고 응원을 해주지도 않음 - 차마 이런 기대까진 하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도 인간이라 눈치를 볼 줄 안다. 그래서 이 식충이 짓도 곧 끝날 것이라 단호하게 약속했다: 나 딱 2주만 아무것도 안 할게.



Q. 현재 무기력하다면?

→ 일단 쉬자(내가 질릴 때까지 뒹굴거리기 - 그래도 기한은 정해놓자)
→ 일단 움직이자(최소 하루 한 가지 미션 수행하고 스스로 칭찬하기)
→ 미션을 추가하며 일상의 활력을 회복해보자



유튜브에서 찾은 정신과 전문의 선생님의 조언을 붙잡고 '일단 쉬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며칠을 게으름을 피우다 - 이것도 질릴 때 '일단 움직이자'라는 다음 스텝을 밟기로 했다. 쌓인 설거지를 시작으로- 다음 날은 빨래- 그다음 날은 화장실 청소... 하루에 한 가지 미션만 수행하고 스스로 수고했다고 칭찬해주었다. 세상 입맛도 없더니만 집 근처 카페의 '사장님이 태국에서 배워온 땡모반'이라는 카피가 아른거린다.(아무 의욕이 없는 상태에서 먹고 싶은 것이 생긴다는 것, 호신호!) 그래서 그날 저녁 식사 후 땡모반 먹기를 미션에 추가해 봤다. 이렇게 일상의 자그마한 활력을 찾아가는 와중에 오늘은 미뤄왔던 '자신 돌아보는 미션'을 수행해 보고자 한다.




무기력의 늪에서 헤엄치다 보이상하게도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또 무엇이든 되지 못할 것 같은 아이러니를 만나게 된다: '희망 빛 좌절' - 빛깔은 분명 희망 색인데, 살살 문지르면 시커먼 좌절 덩어리... 참 이게 뭐람.



나는 왜 이럴까, '적당히'가 없다. 이번 회사에서도 '적당히' 일하는 연습을 해보려고 했건만 결국 실패다.

스트레스가 온몸을 덮치고, 이건 큰일 나겠다 싶을 때 스스로 퇴사를 입 밖으로 뱉어버린다. 다음 글에서는 내 퇴사 연력을 짚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다행히 이번은 권고사직은 아님 - 얄팍하지만, 이 사실에 일말의 자존감이 살아난 것은 정말 다행이지.)


사실 업무를 '적당히' 쳐내기 힘든 내 성향도 문제지만, 이와는 별개로 업무에 권태감이 쌓이면 어느 순간 업무 외 것으로 집중이 옮겨진다... 이건 참 불편한 진실이다.

새로운 일을 배우고 익히며 주변 사람들과 합을 맞춰가고 조금씩 성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오는 희열이 좋다. 그런데 업무가 손에 익고 어느 정도 나만의 루틴이 잡히고 익숙해질 무렵엔, 업무가 아닌 회사의 구조적인 문제나 업무를 둘러싼 여러 가지 단점 등에 집중하면서 불만이 급속도로 불어난다. 그리고 곧 내 업무의 발전성과 조직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진다: 여기서 더 일할 필요가 없다 판단해 버린다.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매너리즘에 빠지기 마련이고, 회사에 크고 작은 불만을 적어도 한두 개 정도는 품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내일 다시 출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 누군가는 업무 외 시간에 즐거움을 찾는 취미를 만든다.
2. 누군가는 점프업을 위한 자기 계발에 투자한다.
3. 누군가는 달콤한 보상으로 리프레쉬한다.

그런데 나는 남들에 비해 이 문제를 현명하게 극복하지 못했다.
워라밸이 무너져 취미를 만들 시간과 에너지가 없었고 같은 이유로 자기 계발도 어려웠다. 만족할 만한 보상을 주는 조직 또한 아니었다. 나의 퇴사 패턴이 다음 회사에서도 반복될 것만 같은 실망감과 무력감이 묘하게 뒤섞여서 그저 허무함을 느꼈는데, 이렇게 정리해보니 막연했던 두려움에 윤곽이 잡힌다. 다음 회사는 신중히 선택해야지. 워라밸이 보장되는 곳에 가거나, 내가 쏟은 수고에 대한 보상이 있는 곳에 가거나! 이왕이면 두 가지가 적절히 잘 버무려진 회사라면 좋겠다. 공백기가 무서워 재고 따지기는 늘 뒷전이었는데 게 문제였다.


런데 말이다. 내 지난 4개월의 경험이 무가치한 시간이었을까? 누군가에겐 의지가 부족한 인간의 정신승리로 보일지 몰라도, 나만은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고 정의하고 싶다. 긴급한 스케줄에 맞춰 업무를 완료시키기 위해 집중했던 시간들, 클라이언트의 만족도를 높이고자 고민하고 소통했던 노력들, 함께 일하는 관계자들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한 나만의 디테일들... 4개월간 나는 충분히 정성스럽게 일했다. 그래서 이력서에 넣을 것이고 면접장에서도 당당히 얘기해 볼 것이다.


내가 이 회사를 선택하고 도전한 결과가 고작 4개월짜리 경험이지만, 내가 쓸데없는 짓을 한 것은 아니니까. 여기서 배운 것들이 훗날 어떤 형태로든 가치를 발휘할 것이라 믿는다.

무기력을 딛고 다시금 희망을 찾는 이 글의 마지막에서, 내게 영감을 준 배우 손수현 님의 영상을 공유하고 싶다. 자기 확신이 부족해 무기력에 허덕이는 어느 누군가에게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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