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아들 볼 손가락으로 찔러본다.. 일어나지 않게발끝을 세우고 고양이 발로 나와서 살포시 안방 문 닫는다. 긴장했던 숨을 고른다. 시계는 저녁 10시 가리키고 있다. 거실에서 한가운데 가서 대자로 누워서 천장을 본다. 오랜만에 천장을 바라본다.. 천장이 질문한다.
" 당신은 누구십니까?"
훅 들어오는 질문에 당황스럽기도 하면서 가슴 깊이 파고든다. 답을 할 수 없다. 나는 나인데?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충격적 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두 아들의 엄마지 "
죽음의 묘비명 최 모 씨 두 아들의 엄마로 열심히 살아가다 눈을 감게 되었습니다. 끝인가?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사람 아녔을 텐데..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던 아이, 수줍게 웃던 소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내가 점점 기억 속에서 지워져 간다. 변화무쌍한 육아의 날씨로 생각할 틈이 없었다. 아기 낳기 전에 돈을 벌어야 해서 바쁘고. 사랑. 관계 등... 하다 보니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본 시간이 없었다. 다음날 같은 어린이집 동갑 나이로 친하게 지내고 있는 엄마에게 전화했다.
"나는 누구인가? 생각해 본 적 있어?"
"아니"친구의 질문에 더 혼란스럽다. 사춘기 때 하지 않았던 질문을 엄마가 되고부터 하는 건가? 나는 어떤 걸 좋아했지? 어떤 걸 싫어하는가?
몇 달 전 들었던 법륜스님의 법문 내용이 떠오른다.(내용 찾아보기 ) 나는 규정할 수 없다. 나는 상황에 따라서 변화한다. 예를 들면 버스를 타면 버스 승객. 마트에 일하면 마트 직원이나 손님, 집에 있을 때 두 아이의 엄마. 길거리 걸어 다니면 지나가는 행인 1.2. 산에 가면 등산객... 노트북에 앉아서 글쓰기 하면 글 쓰는 사람. 등.... 상황에 따라서 나는 변화되고 달라진다. 쓸모 있는 사람. 제일 많이 활동장소 인 가정 생각해 본다. 주부 역할할 때 아이들에게 엄마로서 남편에게 부인으로서... 잘 쓰이고 있다. 만약 도움을 줄 수 없다면.. 쓸모없는 사람인가??
미움받을 용기에 여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가치 있다.
([미움받을 용기 240페이지 철학자.]
예를 들어 , 자네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하세. 의식불명의 중태라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말이야. 이때 자넨 어머니가 '무엇을 했는가'는 조금도 상관하지 않을 걸세.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쁨, 오늘도 생명을 연장한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느낄 걸세. 존재의 차원에서 감사한다는 것은 그런 거라네. 위독한 상태의 어머니는 , 설령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 자네가 가족에게 큰 위안이 될 걸세.
더 이해가 쉽게 자네 자신을 예를 들어보지. 만일 자네가 생명이 위태로워서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다고 할 때, 주변 사람들은 '자네가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크나큰 기쁨을 느낄 걸세, 직접적으로 행위가 없어도, 그저 무사히, 지금 이곳에 존재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할 거라고 ,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될 이유는 없지. 자신을 '행위'의 차원이 아닌 라 먼저 '존재'의 차원에서 받아들이게.)
내 존재 자체만으로 받아들인다. 평일 아침 8시 책과 강연 대표님 내 이름을 불러주실 때 그동안 잊고 지냈던 존재가 깨닫게 된다. 아. 나 바로 여기 있구나.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줄 때..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