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데미안 /헤르만 헤서]
몸의 언어가 몸부림치며 쏟아나 올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밝은 아이의 가면을 썼다. 가면 속에 짙은 외로움 속에서 상처와 고통이 빠져나오려고 할수록 착한 아이가 되도록 노력했다. 어 어린 시절 엄마와 분리불안, 아동폭력등.. 상처로 인해서 두 눈을 마주하는 게 두려웠다. 불안해서 그런지 상대방이 질문을 하면 엉뚱한 말했다.
" 딴생각해?"
" 왜 또 동문서답해!"
이런 말 자주 들었다. 몸은 교실 안에 있지만 마음은 알 수 없는 곳으로 둥둥 떠다녔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면 쥐구멍에 숨어버리고 싶었고 아무도 알 수 없도록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다. 엄마와 담임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하얀 종이 받았다. 그위에는 정서불안이 적어져 있었고.. 선생님께서 엄마에게 진지하게 당부하셨다.
"정서불안으로 충동적이거나 안 좋은 일이 있을 수 있으니 잘 보셔야 해요..대화를 하면 3초 지나면 딴생각해요. "
사람과 대화를 3초 이상 할 수 없다는 게 절망스러웠고 간절하게 대화를 하고 싶었다. '나는 왜 대화가 안 될까? 다른 생각을 하는 걸까? 중요한 일조차도 귀에 담아지지 않고 흘려보내는 걸까? 20살이 되어도 잘 고쳐지지가 않았다. 대학시절 조별 과제 때 제대로 말할 수 없었다. 조별회의할 때 내가 해야 할 과제를 메모했지만 다음주가 되면 엉뚱한 과제를 했다. 조별 한 친구들에게 미안했고 쥐구멍에 숨어버리고 싶었다. 자책하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10년 지난 후에 왜 그랬지는 이해가 되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속으로 곪아져 있었다. 상처 말하고 싶은데 말하면 사람들이 나를 피할까 봐 상처받을까 봐 숨기면서 말문을 닫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법륜의 스님 [정토회] 가게 되었다.
법당에 법문을 듣고 나서 마음 나누기 시간이었다. 난 속으로 '말할까? 말까? 말하고 싶다. 그랬다가 사람들이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면 어쩌지?..'망설이다가 이런 말 하면 사람들이 받아줄까? 말하려고 하는 순간 공포의 순간이 다가오면서 입을 막았다. 더 이상은 이렇게 살지 않겠어. 용기를 내서 긴장과 불안에서 벗어나도록 하기로 했다.
"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4살 때 엄마와 떨어지고 나서 친절할머니께 맡겼는데.... 삼촌이 있었는데..
부엌으로 제 목덜미 잡고 끌고 가서 빗자루를 때려서 온몸에 멍이 들었어요.. "
도반님들은 아무 말 없이 눈빛으로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셨다.
"이 말을 꺼내기까지 너무 힘들었는데.... 막상 말하니 마음이 새처럼 가벼워졌어요."
그동안 답답함이 사라지고 서서히 살 것 같았다. 너무 많은 고통이 한꺼번에 물밀듯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듯했다. 슬픔과 고통을 덜어내면서 다시 살아갈 수 희망이라는 두 글자가 보였다. 희망은 용기로 나아가게 하면서 글쓰기를 통해서 상처와 마주하는 힘이 기르게 되었다. 과거에 나는 트라우마 오면 고통과 좌절에 힘들어했지만 흐 터진 기억의 조각을 깊게 껴안으며 글쓰기를 시작했다. 처음 책상에 앉아서 울부짖으면서, 분노, 슬픔. 절망.. 행위 언어를 몸부림하면서 썼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와 한걸음 떨어져서 과거 나와 현재 나를 분리가 되었다.